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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세영 희망웅상 홍보분과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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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항상 소리와 함께 산다. 자연 소리, 도시 소음과 더불어 끊임없이 사람들 말소리를 듣는다. 어디 그뿐이랴. 바깥에서 들리는 말소리만으로는 부족하기라도 한 듯 내 마음은 이런저런 생각들 소리를 쉴 새 없이 재잘거리며 심지어 꿈속에서까지 뭔가를 속삭인다.
그래서 나는 한 편으로 소리에 대해 감각이 둔해져 버렸고, 다른 한 편으로는 너무 많은 말소리에 지쳐 있을 때도 있다. 내 마음은 소리와 말의 혼돈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평온하게 머물기를 원한다. 그래서 침묵이 필요하다.
침묵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여럿이 함께 말없이 앉아 있을 때에도 때에 따라 그 분위기가 다른 이유는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 모두 뭔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프거나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당연히 분위기가 무겁고 침울할 것이고, 행복하고 즐거운 생각을 하며 침묵할 때는 밝고 가벼운 분위기일 것이다.
그런데 말이 없는 것도 침묵이지만, 진정한 침묵은 말소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마음 속 생각 소리까지도 고요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마음은 생각을 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침묵한다는 것은 아무런 생각 없이 공백이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리 저리 방황하는 마음을 어떤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하면서 그 생각의 의미를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생각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한 가지에 집중될 때 그 에너지가 증폭되며, 침묵의 힘은 바로 집중된 생각의 힘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생각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얻을 수 있는 힘이 다를 것이다. 긍정적인 생각을 할 때는 나와 남에게 기쁨과 활력을 준다. 그러나 단지 기분이 좋고 신나는 데 그치지 않고 문제와 어려움을 넘어설 수 있는 강한 내면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순수한 생각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히 긍정적이기만 한 생각은 가끔 자기도 모르게 순수하지 못한 동기가 섞여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의 장점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경우, 그것은 긍정적인 생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런 생각 속에 나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애착이나 우월감이 들어있을 수 있다. 조금이라도 애착이 있거나 우열을 따지는 마음이 들어 있을 때에는 순수한 생각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언젠가는 그것이 슬픔이나 고통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완전히 순수하지 않은 생각은 기쁨과 만족은 줄 지 몰라도 내적인 힘을 키워 주지는 못한다.
순수한 생각이란 긍정적인 생각 중에서도 생각하는 사람의 이기심과 욕심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생각일 것이다. 그 차원을 좀 더 넓혀보면 불변의 가치나 영원한 진리에 관한 생각이 가장 순수하다. 영원한 자아와 신, ‘밤과 낮’, ‘생과 사’처럼 끝없이 순환하는 시간, ‘뿌린 대로 거두는 것’과 같은 정교한 우주의 질서 등을 깊이 되새길수록 더 많은 것을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되며, 그런 순수한 생각들이 나의 진실이 될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커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내 공간과 시간에 침묵을 더 가까이 끌어오고 싶다. 침묵 속에서 나는 정화되고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