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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책 한 권으로 하나되는 양산] 스스로 치유해 가는 아이들..
기획/특집

[책 한 권으로 하나되는 양산] 스스로 치유해 가는 아이들, 칭찬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7/10/24 08:55 수정 2017.10.24 08:55
성명남 시인(삽량문학회)












 
ⓒ 양산시민신문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결핍과 상처를 갖고 살아간다.


유정이는 입천장과 윗입술이 갈라진 구순 구개열(언청이)로 태어났다. 장애가 있는 유정 때문에 불화가 잦던 엄마는 집을 나가고 외지로 떠돌던 아빠도 세상을 떠나고 만다. 고아가 된 유정이는 할머니와 총각인 삼촌 손에서 자란다. 자라면서 자각한 결핍으로 마음 상처가 자꾸 덧난다. 수술과 언어치료를 병행한 후 좋아졌다지만 흘끔거리는 시선에 붙잡히면 발음이 막무가내 꼬이기도 한다. 


유정이를 좋아한다고 들이대는 넉살 좋은 광수도 엄마가 없다. 중국 동포인 엄마는 아빠랑 이혼한 뒤 고시촌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 광수는 부쩍 철이 들어 단단해진다. 유정이가 전교 1등 자리를 내줘야 했던 도시에서 온 우주는 이삼 년에 한 번씩 바뀌는 성공회 교회 신부님 아들이다.



전학을 자주 다닌 탓에 친구가 없어 외롭다. 신부님 아들답게 언제나 예의 바르고 착해야 하므로 힘들어 한다. 공부 잘하는 언니 오빠들에 치여 천덕꾸러기인 지희는 일주일 만에도 꿈이 바뀌곤 하는 발랄한 소녀다.


이들 사총사가 사는 살문리는 산과 들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봄이 오면 물오리나무가 연둣빛 뭉게구름을 피워내고 산마루까지 진달래가 꽃무리를 이룬다. 아침마다 종이 달라도 우르르 몰려와 어울리는 노랑텃맷새, 박새 소리에 눈을 뜨고, 소쩍새 울면 참깨 심고 콩 심고 뻐꾸기 울면 보리 베고 모내기한다. 



계절마다 수많은 꽃이 피어나고 그 꽃이 필 무렵에 무엇인가 심고 꽃이 질 무렵에는 무엇인가 거둔다. 무성한 고마리꽃 물봉선이 피고 지면, 보랏빛 개미취와 쑥부쟁이가 지천으로 피어 수확철임을 알려준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정이를 위해 귀향한 삼촌은 베트남 여성과 결혼한다. 무뚝뚝하기로는 으뜸인 할머니도 이국에서 시집온 작은 엄마에겐 살가웠다. 다문화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받는 고충도 만만찮은데 유정이까지 친자식으로 잘 키워주는 심성 고운 며느리에게 미안하고 고마웠을 것이다. 갓 태어난 핏덩이를 일부러 윗목에 밀쳐두었다던 할머니 진짜 속마음을 일찍 철 든 유정은 다 알고 있다.


작은 아빠는 친환경 농법만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며 농촌을 살리려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하지만 판로가 문제였다. 농산물 개방으로 국산 농산물 가격은 하락하고 있는 판국에 시설투자로 빚은 늘어나니 동네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제 희망이 없다며 정부 정책에 대해 불만을 이야기하다 언성을 높이기도 한다.



애지중지 키우던 젖소를 산 채로 땅에 묻고 절망에 빠져 방황하던 광수 아버지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소를 키우기로 했을 때 속 깊은 광수 장래 희망이 공고 자동차학과에서 농고 축산학과로 바뀌었다.


책 읽기를 마치고, 어두운 주제가 많았음에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살문리 사총사와 조우가 고맙다. 유정이가 몰래 좋아하는 우주를 나도 좋아한다. 티격태격해도 씩씩한 광수가 좋다. 할머니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작은 엄마가 외국 사람이라서 겪는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다. 작은 아빠와 동네사람들이 재미나게 농사지으며 살문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무엇을 감추든 마음에 비밀을 숨겨두고 사는 건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쉽게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비록 결핍과 상처가 있다는 걸 알았더라도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며 조금씩 아물어 갈 수 있게 지켜봐 주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응원이다. 어느새 훌쩍 자란 몸과 마음에 봄이 오고 사총사는 다른 고등학교로 흩어졌지만 아침마다 곤줄박이 쇠딱따구리 진박새처럼 활기차게 인사를 나눈다.


“얘들아, 씬 짜오!(안녕) 모두 깜언!(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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