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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남 시인 양산문인협회 회원 | ||
ⓒ 양산시민신문 |
배나무에 열린 배를 덮고 있던 흰 종이 누런 종이들이
만장처럼 매달려 펄럭인다
먼 데서 보면
흰 꽃들이 소복이 피어 있는 듯
십일월의 과수원은
배를 갓처럼 싸고 있던 흰 종이들이
배나무가 순산을 하듯
탯줄을 끊고 떨어져나간 자리에서
어쩔 줄 모르고 나부끼고 있다
빈 가지마다 거두지 못한 태반처럼
종이들이 남겨져 펄럭이고 있다
다 늦은 가을 흰 꽃들은 피어서,
큼직하게 매달렸던 배들이 떨어지고 난 자리에
흰 꽃들은 피어나서
바람이 불어도 떨어지지 않는
스산한 흰 꽃들은 난만히 피어나서,
눈이 내리는 듯한 세상이 가고 또 오는 듯
펄럭, 펄럭이고 있다
눈송이들이 멀어지며 작아지고 있다
떨어진다는 것, 가고 없다는 것, 텅 빈 나뭇가지에서 계절이 주는 아픔과 동시에 인간이 가지는 칠정(七情)을 느낀다.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애지중지 배를 감싸며 지켜온 흰 종이들도 펄럭이다가 떨어질 것이고 큼직하게 매달렸던 배도 어느 집에서 제 몫을 다하며 끝맺음했을 것이다. 제 몸을 감싼 종이에 대한 그리움을 남기면서. 가까운 사람을 어느 날 갑자기 잃어버린다는 것에 대한 슬픔이 자연의 이치와 다를 바가 없다.
십일월의 배 밭 과수원에서 상실의 아픔을 느끼는 화자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지는 이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