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모범생 아이가 학교가 재미없다며 등교를 거부했다. 하지만 부모는 놀라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 차분히 8개월 동안 고민했다. 결국 학교 밖을 선택했다. ‘세상이 요구하는 공부가 아니라 아이가 행복한 공부를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초등학교 자퇴 후 홈스쿨링으로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올해 영산대학교 법학과 수시모집에 합격한 이지영(14, 소주동) 양 얘기다. 이 양은 동급생인 친구들이 고등학교에 진급하는 내년 3월 대학 새내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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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이 조금은 특별한 길을 걷게 된 데는 엄마 한정아(41) 씨 역할이 컸다. 태교부터 독서교육을 해 온 한 씨 덕에 ‘책벌레’가 될 수 있었고, 학교에 흥미를 잃은 이 양에게 홈스쿨을 제안한 것도 엄마다.
“학교 갔다가 집에 오면 ‘오늘 재미있었니? 무슨 질문했니?’라고 묻곤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선생님이 허락하는 시간에만 질문하라고 하셔서 오늘은 아무 질문도 못 했어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게다가 연산 능력이 떨어진다며 방과후 보충으로 수학수업을 하고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온 적도 있었죠.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이듬해인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학교를 떠났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대안학교를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선생님이자 멘토가 돼 홈스쿨을 시작했다.
“틀에 박힌 규칙이나 생활계획표는 없었어요. 단지 하루 24시간 안에 목표한 양만큼만 공부하자는 생각이었어요. 날씨가 유난히 좋으면 소풍을 가기도 하고, 소설책을 읽다 밤을 지샌 날은 12시까지 늦잠을 자기도 했어요. 그리고 EBS 교육방송과 학습지 이렇게 2가지로만 공부했어요”
↑↑ 집이 학교이고, 엄마가 선생님이 되는 홈스쿨링으로 공부한 이지영 양은 별도 교과서 없이 EBS 교재와 방송만으로 초중고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하고, 대학시험을 위해 부족한 과목은 학습지로 채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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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보는 공부’가 아닌 ‘내가 행복한 공부’를 한 탓일까. 이 양은 홈스쿨을 시작한 지 4년만인 2015년 초졸, 중졸 검정고시를 보란 듯이 통과했다. 그리고는 진짜 고민에 들어갔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엄마와 대화하고 또 대화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할 실력이었지만 그 이전에 지영이 미래와 꿈에 대해 깊이 얘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법학도와 화학공학자 등 학력이 필요한 직업군에 관심을 보이더군요. 그래서 대학을 가기 위한 입시 공부를 하자는 목표를 다시 세웠죠”
그렇게 대입을 준비했지만, 오로지 입시와 문제풀이를 위한 공부만 하지 않았다. 이 양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후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서 사회 부조리가 계속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자신과 같은 학교 밖 청소년 문제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지난해 양산시에서 운영한 제1회 청소년의회에 청소년의원으로 자원해 참여했어요. 청소년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지역사회 문제를 토론한다는 데 흥미를 느꼈죠. 5분 자유발언을 통해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지원 확대와 차별 완화 정책을 제안했는데,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학교 밖 청소년도 장학금과 프로그램 참여에 있어 재학생과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 하고, 이들을 위한 바우처 카드 제도를 도입하자는 당찬 제안이었다. 엄마 한 씨 역시 홈스쿨링은 홀로 알아서 헤쳐 나가야 하는 외로운 여정이라고 말했다. 누나 뒤를 이어 홈스쿨링을 하는 남동생까지 돌보며 대학진학을 한 지영이가 대견하지만, 세상 편견은 물론 높은 교육 진입 문턱과 싸우는 딸을 지켜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과도한 입시경쟁과 사교육에 찌든 한국 중고생 현실은 거론하기도 새삼스러울 만큼 오래된 비극이죠. 자신의 꿈이 뭔지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욱여넣은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학교 밖 청소년은 지식을 소유, 암기하고 검사하는 일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에서 벗어나 진짜 꿈을 찾아가는 아이들입니다. 학교 밖 아이들이 제도권 밖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더는 편견과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