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대란 대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모들 체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더욱이 기본현황이 뒤죽박죽된 상황에서 행정기관마다 ‘동상이몽’의 엇박자 대책을 세우고 있어 지켜보는 부모는 속이 타들어 간다. 그래서 답답한 부모들 심정을 직접 들어봤다. 2시간여 동안 쏟아낸 이들 대화를 가감 없이 지면에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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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엄아현 기자 보육대란으로 양산이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비판하는 언론도, 대책을 촉구하는 정치인도, 대책을 내놓은 행정기관도 사실상 당사자가 아니다. 얼마나 심각한 상황이며, 그래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부모들이 직접 얘기해 달라.
황보경민 지난해 첫 아이를 근처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물금지역 유치원 5곳에 넣었다가 다 떨어졌다. 그런데 올해는 연년생 아이들을 같이 보내려고 유치원을 아예 포기하고 추석 지나자마자 5, 6세가 함께 갈 수 있는 어린이집을 알아봤다. 역시나 물금지역에 우리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하는 수없이 상북지역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했다. 통학차량으로 왕복 1시간 거리다. 이마저도 정차 없이 직행했을 때 걸리는 시간인데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된다.
김기령 남편 직장 때문에 2년 전에 양산으로 이사 왔다. 내년에 물금신도시로 다시 이사할 계획인데, 보육대란 얘기를 들으니 고민이 크다. 단순히 선호하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갈 수 없어서 이런 대란이 생긴 건 아닌지 알아봤더니, 정말 아예 갈 곳이 없어서 문제라는 거다. 놀랐다. 우리 아이들 첫 배움터를 선택하는데 교육시설이나 교육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원과 대기인원을 먼저 체크하고 있단다. ‘여기 프로그램이 어때?’라고 묻는 것은 사치가 돼버린 것이다. 내년에 다시 부산으로 이사를 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이홍실 자꾸 물금만 얘기하는데 동면도 상황이 심각하다. 내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유일한 기준은 통학차량 운영 여부였다. 그런데 10분 거리에 있는 한 어린이집은 ‘대기자도 많은데 굳이 거기까지 차량을 운행할 필요는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던 중 아는 지인을 통해 부산 금곡동에 있는 한 유치원을 소개받았고, 그 유치원은 ‘당연히 아이를 태우러 가야죠’라며 흔쾌히 대답해 줬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산 금곡동 유치원을 선택했다.
조현진 현재 내가 닥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보육대란을 지켜보면서 당장 내년에 나도 밤새 줄을 서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그래서 얼마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지, 대책은 없는지 직접 묻고 싶어서 경남도교육청, 양산교육지원청, 양산시청에 민원을 넣었다. 답변은 문제는 있고 당장 대책은 없다는 거였다. 인구유입에 맞춰 최소 3년을 내다보는 계획을 세웠어야 하는 것 아니냐? 내년이 많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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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희 7년 전 우리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낼 때와 너무 달라진 상황에 놀랐다. 카페 회원 중 한 사람이 유치원 두 곳에 합격했는데 어디로 보내야 할지 고민이라는 얘기를 했다가, 카페에서 상당한 공격대상이 됐다. 맘카페는 이런 고민을 털어놓고 정보를 교환하는 곳인데, ‘당신처럼 이중으로 입학원서를 넣는 엄마들 때문에 내 아이가 갈 곳이 없다’, ‘나는 대기자 명단조차 오르지 못했는데 어디서 자랑질이냐’라는 식으로 인신공격을 당했다. 유치원에 당첨(?)돼도 함부로 기뻐하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너무 안타깝다.
엄아현 기자 보육대란 핵심은 물금ㆍ동면 신도시지역에 누리과정 교육을 받아야 하는 5세~7세까지 갈 수 있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기관들은 기본현황과 근거 자료 등이 뒤죽박죽된 데다, 현실과 동떨어진 엇박자 대책을 내놓고 있다. 부모들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대책이 있나.
황보경민 마치 유치원 부족만이 문제인 것처럼 비쳤는데, 아니다. 어린이집도 5, 6, 7세가 갈 곳이 없는 게 문제다. 물론 유치원을 선호하는 부모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어느 지역에서나 흔히 있을 일이다. 문제는 유치원이 부족한 데다 이를 대체할만한 어린이집도 부족했기 때문에 사태가 커진 것이다. 그런데 대책이라고 하는 것이 유치원을 선호하는 부모들 의식교육을 하는 것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과연 물금ㆍ동면지역에 5, 6, 7세가 갈 수 있는 어린이집 정원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해 달라. 그리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 달라.
김기령 신도시 보육대란 여파가 심각하다. 구도심도 비교적 선호도가 높은 어린이집은 이미 정원 초과다. 딴 지역 얘기라고 생각하고 안심했던 신도시 외 지역 엄마들도 지금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그리고 유치원 입학금이 100만원을 호가하고, 월 교육비를 40여만원까지 제시한다는 소문이 있다. 혹여나 수요ㆍ공급이 맞지 않아 보육기관들이 ‘갑’ 행세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행정기관의 실태 파악, 관리ㆍ감독이 시급하다.
이홍실 초등학교 과밀 문제를 최근에야 알게 됐다. 신도시 초등학교 한 학년이 13~14학급이라고 하던데, 우리 아이를 콩나물시루 같은 공간에 밀어 놓고 싶지 않다. 동면에 초ㆍ중 통합학교 얘기도 들었다. 중3과 초1이 한 공간에서 지낸다? 어린아이들은 도화지처럼 나쁜 말과 나쁜 행동을 빨리 흡수하는데, 학교폭력ㆍ성 문제 등이 너무 걱정된다. 고등학교도 유학 보내는 심정으로 다른 지역으로 보내고 있다고 하는데…. 정말 부산으로 이사 가고 싶다.
조현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짓는 게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공립 보육기관을 확대할 수 있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줬으면 한다. 엄마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 바로 보육도 공교육화됐으면 하는 것이다. 사실 나도 집 앞 초등학교에 있는 병설유치원을 보내고 싶다. 요즘 병설유치원 가방을 메고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다.
박선희 최근 ‘양산을 떠나야 하나요?’라는 게시글이 카페에 많이 올라온다. 양산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 속상하다. 양산신도시만큼 유모차가 많이 다니는 곳이 없다. 평지에다가 기반시설도 잘 갖춰져 있어 정말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보육ㆍ교육 현실이 닥치니 아이 키우기 위해 떠나야 하는 도시가 돼 버렸다. 이번 계기로 부모들 얘기를 직접 듣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