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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다현 효암고 2학년 | ||
ⓒ 양산시민신문 |
솔직히 고백하건대, 사실 처음에는 단지 일본이라는 외국으로 놀러 간다고만 생각했다. 친구들과 쇼핑도 하고 관광지에서 사진도 찍을 생각에 마냥 신나고 설레기만 했다. 하지만 역사기행을 다녀온 지금은 일본에서 듣고 본 역사적 사실과 깨달음으로 전보다 더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평소 우리가 역사를 정확히 잘 알고 있어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우선 우리는 임진왜란과 관련해 임진왜란 출정지인 나고야 박물관과 나고야 성터를 방문했다. 임진왜란 시기 많은 조선 도공들로 인해 일본 도자기 문화를 새롭게 바꾸게 했다는 아리타 마을 일대에서 우리의 역사를 찾았다. 또 일제강점기와 관련해 나가사키 군함도와 원폭 중심지, 평화자료관에서 현지인을 통해 당시 사실적 증언이 담긴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최용수 선생님은 “역사 현장에서 편향되지 않는 객관적 사실을 인지하고 성숙된 역사관을 가지고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일본기행 후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 ‘군함도’라고 말할 것이다.
요즘 많은 매체에서 군함도를 소재로 한 영화나 예능 등을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군함도를 조금은 알고 있다. 나도 그랬다. 역사 수업시간에 배웠고, 영화도 봤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보고 배운 것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었다. 지금처럼 큰 영향을 주고 진심으로 같이 아파하기에는 부족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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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함도 현장 |
ⓒ 양산시민신문 |
군함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고, 바람과 파도 때문에 많이 지쳤다. 힘들게 도착해 군함도에 도착해 발을 내딛는 순간 왠지 모를 전율을 느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땅 아래에서 우리 조선인들이 힘들게 노동했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과 배고픔, 무서움을 속으로 삼키며 고향을 그리워했을 생각을 하니 여러 감정이 밀려와서 그랬던 것 같다.
허가된 견학구역은 군함도 전체 크기에 비해서 정말 일부였다. 하지만 그 일부만 봐도 모든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군함도를 돌아다니며 일본인 가이드가 일본인을 대상으로 군함도를 설명해줄 때 나는 한국어로 번역된 군함도 책자를 봤다.
충격적인 것은 책자에는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한국인에 대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걱정이 됐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일본인 가이드가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지 대충 예상이 됐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아마도 군함도의 진짜 모습을 모른 체 최초의 콘크리트 고층아파트와 영화관, 병원 등이 설립된 군함도의 껍데기에 자부심을 느끼며 유네스코 등재 관광명소로만 알고 돌아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희생과 흘린 피와 땀이 절대 지워지지 않기 위해 나도 내 자리에서 열심히 역사공부를 하며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군함도를 견학하고 돌아가는 배 위…. 많은 조선인이 군함도로 강제로 잡혀갈 때 배 위에서 얼마나 두려워했을지, 점점 배가 육지에서 멀어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도망할 수 있다는 희망마저 사라져버렸을 때 느꼈을 막막함이 얼마나 클지, 외딴곳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이 얼마나 무서웠을지에 생각해 봤다. 그들의 상처를 다 헤아리지는 못했지만 돌아가는 바다 위에서 진정으로 느껴보려 노력을 했었다.
어떤 물질적 보상으로도 지울 수 없는 이 아픔의 해결책은 ‘일본의 진실된 사과’ 밖에 없을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강제노동의 사실을 인정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해 우리 조상님들이 편히 잠드실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