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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지역문화와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오피니언

지역문화와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8/04/03 09:44 수정 2018.04.03 09:44
신라 아닌 가야문화권이었던 양산
고고학 발굴, 학술대회로 재확인
정치체 등 고대 양산 알기 위해
지역문화 연구 반드시 필요
중견도시 걸맞은 문화정책 펼쳐야













 
↑↑ 조수현
(재)한반도문화재연구원장
문학박사(고고학)
ⓒ 양산시민신문 
지난여름 정부의 가야사 복원사업이 국정과제에 포함된 후, 경남도와 이에 예속된 지자체에서는 가야사 복원 예산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양산시 역시 경남도가 발표한 가야사연구복원 종합계획에 가야권역 고분군 역사 연구와 복원 정비 사업, 가야진사와 가야진용신제 연구ㆍ복원사업이 선정돼 올해부터 추진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가야사연구복원 종합계획에 포함된 전체 61건 가운데 양산시는 비록 2건에 해당하는 적은 숫자지만 265억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양산시는 주지하다시피 최근까지도 줄곧 신라문화권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최근 다수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가야문화 실체가 새롭게 드러났다. 이것을 통해 양산지역이 원래부터 신라문화권이 아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했고, 이에 대한 연구성과는 지난해 하반기에 개최한 2번의 양산시 가야사 학술대회를 통해서 재확인됐다. 여기에 대한 학술자료는 ‘고대 양산의 가야문화-가야에서 신라의 길로 가다(2017, 양산시ㆍ(재)한반도문화재연구원)’라는 제목의 학술 단행본으로 제작됐다.


한편, 양산시의 지리적 위치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와 부산에 가까워 낙동강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가야문화권에 해당한다. 문헌기록을 통해 보면 양산지역과 가장 가까운 김해 금관가야는 신라 법흥왕 19년(532년)에 복속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고고학에서는 이보다 약 100년 정도 빠른 5세기 전반 대에 금관가야지역이 이미 신라화됐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 이유는 금관가야의 왕묘군인 김해 대성동고분군이 5세기 전반 대에 지배층의 무덤 축조가 중단되고, 이후 금관가야지역 고분군에서 출토되는 유물이 대부분 신라문화를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라문화 수용 의미는 5세기 전반 대에 신라가 금관가야를 간접지배방식을 택해 독자적인 자치권을 인정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100년 후에는 신라가 가야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금관가야를 직접지배해 복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신라문화와 가야문화가 결점하는 양산지역은 어떠했을까? 주지하다시피 양산지역은 신라가 가야로 진출하는 주요 요충지이다. 이 견해에 대한 실마리는 최근 양산시 가야사 학술대회에서 제시한 양산 부부총 발굴조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양산 부부총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 의해 발굴된 뼈아픈 고분이며, 이후 1991년 동아대학교박물관에서 재조사를 진행했다. 당시에 밝힌 결과는 6세기 전반 대에 추가장이 이뤄진 부부합장묘의 횡구식석실묘였다. 하지만 양산시 가야사 학술대회 발표자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이주헌 소장에 의해 부부총은 횡구식석실분이 아니고, 부부합장묘보다는 순장을 시행한 고분으로 추정됐다. 


신라는 지증왕(502년) 때 순장제금지를 제정했다. 순장제금지 외에도 ‘신라’ 라는 국호와 마립간에서 왕으로 왕호(지증왕 503년)를 사용했다. 하지만 순장제가 폐지된 6세기 초에도 양산지역은 여전히 순장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것은 신라 중앙의 직접적인 지배를 받지 않은 독자적인 가야세력이 양산지역에도 존재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견해가 만약 타당하다면 양산지역도 금관가야와 마찬가지로 적어도 6세기 전반까지 신라에 복속되지 않은 독자적인 가야정치체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독자적인 가야정치체의 국명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연구성과에 의하면 양산지역 가야국명은 삽라국, 사라국 등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러한 양산지역 가야국명을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서는 차후 끊임없는 지역문화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산시와 관련된 고대문헌은 물론, 당시 지배층 고분군인 북정ㆍ신기동고분군, 중부동고분군과 함께 웅상지역 삼호리고분군에 대한 학술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중요고분군과 함께 지척에 있는 고대산성에 대한 성격규명도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다행히 올해 양산시에서는 지역문화유산에 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여기에 대한 종합정비계획을 시행할 예산이 책정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생각된다. 지금 양산시는 짧은 시간 동안 주변 대도시 영향으로 급성장했고, 인구 역시 30만이 넘는 중견도시로 도약했다. 앞으로는 이러한 중견도시 면모에 맞는 지역문화와 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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