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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먼저 떠난 후배를 그리워하며..
오피니언

먼저 떠난 후배를 그리워하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8/05/01 09:35 수정 2018.05.01 09:35
청소년 목소리가 들리는 사회를 위해
청소년 모의투표 준비하다
젊은 나이에 심정지로 먼저 떠난
YMCA 후배를 기억하며…













 
↑↑ 이지양
양산YMCA 사무총장
ⓒ 양산시민신문 
37살 젊은 나이로, 청소년 모의투표를 준비하면서 전국을 돌며 정신없이 일하던 후배 간사가 강원도 원주에서 회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갑작스러운 심정지로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뒤로하고 4월 20일 청소년들의 친구로 평생을 함께했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우리 곁을 떠났다. 

장례식장에서도, 화장터에서도, 선산 아버지 옆에 나란히 묻힌 장지에서도 펑펑 눈물이 나지 않던 나는 이제야 불쑥불쑥 눈물이 터져 나온다. 그를 그리워하며 사람들이 올린 페이스북에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울고, 오래된 사진 폴더를 뒤져 둘이 찍은 사진을 찾으며 울고, 3년간 서울에서 일하면서 누구보다 각별했던 팀원이었던 그를 떠나보내며 겪을 나의 상실을 걱정해주는 사람들 위로에 울고, 무엇보다 이제 다시 그 녀석의 해맑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현실에 먹먹해져서 또 운다. 



한국YMCA葬으로 치러진 장례식 추모예배에 그가 평생 가장 사랑했던 청소년들이 모였다. 생명평화와 YMCA를 이야기하던 청년들이 모였다. 그를 사랑했던 전국의 YMCA 사람들이 눈물로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모였다. 아마 의학적인 연명장치를 다 떼내고도 8시간을 힘겹게 버티던 그의 심장은 토요일을 기다려 청소년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4년 전 수학여행길 세월호에 탔던 단원고 YMCA친구 성복, 은지, 미지, 영은, 주희, 제훈이를 떠나 보내고 그때부터 시작된 길 위의 나날들. 차갑게 죽어간 친구들 죽음 앞에 정직하게 분노하고 눈물 흘리며 세월호의 비극을 함께 겪은 우리들의 십자가를 소리 내어 떠들면서, 무뎌져 갈 아픔을 서로 고백하면서 불의한 세상을 향해 날 선 검날을 세우고, 청소년들과 함께 생명평화의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는 고백을 실천했던 그의 삶을 곁에서 본 세월호 유가족들이 밤새 만든 노란 리본을 유골함과 함께 묻어 달라며 가지고 왔다. (별이 된 그는 아마 세월호 청소년들과 함께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리라.)


청소년이 보이는 지역사회, 청소년의 목소리가 들리는 지역사회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했던 18세 참정권 운동을 이끌어 가면서, 지난해 청소년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아보는 ‘청소년모의투표’ 운동을 시작하고 올해 도지사와 교육감선거 청소년모의투표, 청소년이 정치를 이야기하는 청소년민주시민학교를 위해 밤늦게까지 전국을 돌며 회의하던 그의 마지막 여정을 기억한다.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기 위해, 그가 평생 소원했던 18세 참정권 운동을 제대로 해보자고 결의한다. 단순히 18세가 투표권을 갖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정치를 이야기하고 정치에 세력으로 단결될 때 만들어질 꿈들, 이 땅에 견고하게 자리 잡은 공부 잘하는 아이와 공부 못하는 아이로 가르는 이분법이 무너지고, 입시를 위해 저당 잡힌 청춘의 시간이 해방되는 시간을 꿈꾼 그의 꿈을 이어가자고 말한다. 


오늘, 그를 잊고 싶지 않아서 특별히 부탁했던 그의 정리되지 않은 책상에 놓여있던 그의 이름이 새겨진 나무이름표를 전달받았다. 동그란 이름표를 쓰다듬으며 청소년YMCA LT(Leadership Training)에 참석한 올해 임원진 아이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가장 괜찮은 리더 한 명을 소개했다. 37살, 한국YMCA전국연맹 구자훈 간사는 그가 찍힌 모든 사진이 전부 다 활짝 웃고 있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났다. 늘 무장해제시키는 선한 웃음으로 먼저 가슴 한켠을 내어주었다. 늘 먼저 다가가서 이야기를 걸었다. 그리고 5분 만에 금방 친구가, 형제가 됐다. 늘 이상하게 머리카락을 잘랐다고 구박했었는데 알고 보니 청소년Y 친구가 미용사가 돼 개업한 그 집에 가서 꼭 머리를 잘라야 한다고 멀리 원주까지 다녀오곤 했단다. 



눈에 실핏줄이 터질 만큼 과도한 일 폭탄 속에서, 다크서클이 발밑까지 내려올 때도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과 밤늦은 대화를 신나했었다. 아이들과 생명평화와 YMCA를 이야기할 때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그런 사람을 내가 알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 눈물이 나지만, 구자훈 간사와 함께 있으며 전하지 못한 말을 이제야 건넨다. 



“넌 언제나 내게 최고였어. 사랑한다. 내 곁에 잠시 함께 있어 줘서 행복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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