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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현 (재)한반도문화재연구원장 문학박사(고고학)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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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사 복원사업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옛 가야지역에 속한 지방정부는 이 사업과 관련한 정부 예산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본질적인 이유는 지자체마다 그동안 가야 관련 유적에 대한 정비복원사업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지만 그 이면에는 각 지자체의 가야유적 정비를 통해 문화와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그러나 정작 가야사를 왜 복원해야 하는가에 대한 공무원 인식은 부족하다. 자칫 제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시민에게 공감을 얻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야사 복원에 대한 시민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
가야사 복원사업 발표 이후 양산시는 지역 내 가야유적에 대한 정비계획을 마련하고 이에 수반되는 예산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다른 지자체보다 한발 앞서 한 해 2번의 ‘양산시 가야사 학술대회’를 개최해 나름대로 예산도 확보했다. 그러나 정작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민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 같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는 양산시 가야사 복원정책이 너무 관 주도로만 이뤄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민의 지속적인 관심과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관 주도에서 벗어나 시민단체는 물론, 시립박물관, 양산문화원, 언론사, 교육지원청 등과도 연계해야 한다.
실제 시민 대부분은 가야사 복원사업이 이뤄진다는 것은 대중매체를 통해 알고 있지만 가야사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은 그다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는 가야사와 관련한 문헌기록이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시민의 지역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 부족도 그 원인이다. 가야사 복원사업은 어찌 보면 지역문화와 역사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킬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사실 우리가 그동안 배운 한국 고대사 교육 방향은 주로 삼국(고구려ㆍ백제ㆍ신라) 위주였다. 그러다 보니 가야는 신라와 백제 틈바구니에 낀 조그만 나라로만 알려져 왔던 것이다. 현재도 교과서에는 삼국 역사 중심으로 기술돼 있고, 가야에 대한 내용은 몇 줄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가야는 금관가야(김해)와 대가야(고령), 아라가야(함안), 소가야(고성ㆍ진주) 정도다.
하지만 최근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전혀 다른 놀랄 만한 역사적 사실도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고대 가야 영역에 대한 것이다. 문헌기록에는 가야 영역이 서쪽은 지리산과 섬진강, 동쪽은 황산강(낙동강)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경계를 넘어 서쪽으로는 전북 장수, 남원, 무안, 진안, 그리고 전남 순천, 광양, 구례, 여수 등, 동쪽으로는 양산과 기장, 부산에서도 가야 유적과 유물이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통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이처럼 가야 영역과 삼국에 대한 기록은 고려 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기인한다. 삼국 기록이 주이지만 삼국과 연관한 가야 기록도 조금 남아있다. 이 기록에 나타난 가야국은 주로 육가야로 표기돼 있다. 하지만 8세기 초(720년)에 편찬된 일본서기에는 12개국 이상의 가야국이 등장하며 가야와 관련한 기록이 꽤 많이 남아 있다. 임나일본부의 명분이 된 ‘임나’라든지, 합천을 ‘다라국’으로 비정(批正)하는 근거 역시 일본서기에서 찾을 수 있다.
가야는 최소 12국 이상의 나라가 지역마다 존재하고 있었지만 삼국처럼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신라와 백제에 의해 멸망한 패자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가야사 복원의 진정한 의미는 ‘내적통합’이라고 본다. 하나로 통합하지 못할 때 먼 옛날 가야처럼 패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교훈을 거울삼아 새로운 양산시정은 구태의연한 과거 잘못에 집착하기보다는 더 나은 양산의 미래와 발전을 위해 하나가 돼 새롭게 나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