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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웅 아는사람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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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5월 삼호동에 있는 빌라를 전세금 5천만원에 2년 기간으로 임차한 가족이 있습니다. 가족 모두 입주와 동시에 전입신고를 마쳤고, 계약서에 확정일자까지 받아뒀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엄마가 빌라 주인에게 연락해 아빠 이직으로 갱신 없이 만기인 5월에 집을 비우고 싶다고 말했더니 대뜸 너무 급작스럽다며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오기 전까진 한 푼도 내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이 가족은 행여나 전세금을 떼일까 하는 걱정에 울며 겨자 먹기로 아빠만 새 직장 근처인 물금에 원룸을 얻어 때아닌 이산가족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더욱 나은 해결책은 없을까요?
가족들 걱정은 나름 일리가 있습니다. 주택임대차에서 대항력(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때까지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지려면 입주와 전입신고가 필요한데, 가족 모두 이사를 나간다면 대항력은 물론, 확정일자로 확보해뒀던 우선변제권(후순위 권리자나 일반 채권자에 앞서 경락대금을 배당받을 수 있는 힘)마저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갑 중의 갑이라는 건물주가 보증금을 선선히 내어놓을 때까지, 쓰지 않아도 될 돈까지 써가며 이산가족 생활을 감수해야만 하는 걸까요? 다행스럽게도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이런 상황에 대비해 ‘주택임차권등기명령’ 제도를 마련해두고 있습니다.
◆ 주택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주택 임대차가 종료된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라면, 임대인 동의나 협력을 구할 필요 없이 단독으로 그 주택이 있는 지역의 법원(양산이라면 북부동에 있는 양산시법원)에 주택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주택임차권등기가 마쳐지면 그 등기와 동시에 대항력, 우선변제권이 생기고, 등기 이후에 이사를 하더라도 종전에 가졌던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다만, 그 등기는 신청에 따른 법원 결정이 임대인에게 고지돼야 이뤄지고, 따라서 신청을 마친 후 바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서는 안 되고, 그 전에 등기부를 열람해 주택임차권 등기 사실이 기재됐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임차인이 주택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하고 그 등기를 받는 데 사용한 비용은 임대인에게 청구해 받을 수 있고(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8항), 등기 후 이사했다면 변경된 주소로 ‘등기명의인 표시변경등기’를 해둬 경매 등이 문제 될 때 이해관계인으로서 그 내용을 통지받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주택임차권등기명령으로 등기가 마쳐지면, 이후에 들어온 임차인은 소액임차인으로서 보호를 받을 수도 없고, 보증금 변제순위에서도 등기를 가진 임차인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어 그 주택의 임대차 계약을 꺼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임대인인 건물주가 귀한 건물을 마냥 놀려둘 생각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보증금을 마련해 빨리 돌려주면서(보증금을 돌려준 다음에야 등기의 말소도 구할 수 있습니다), 등기 말소를 위한 서류(주택임차권등기명령신청취하서, 인감증명서 등)를 받아두려고 할 것이고, 그 결과 등기를 가진 임차인은 굳이 사정사정 않더라도 보증금을 조금이라도 빨리 받을 수 있습니다.
딱딱한 법전 속에 뜨거운 심장과 눈물이 있으리라 바랄 수는 없지만, 무척 다행스럽게도 그 안에는 정의와 형평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습니다. 부디 이 점을 기억해서, 일상의 부조리와 부당함 앞에서 너무 쉽게 포기하거나 순순히 체념하지 않기를 바랄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