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이지양 양산YMCA 사무총장 |
ⓒ 양산시민신문 |
|
함께 일하는 친구가 결혼한다고 한다.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한편 뒤따라 드는 생각을 기어이 말로 내뱉는다.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어때? 꼭 결혼이란 제도 안으로 제 발로 들어가야 해?”
결혼은 해도 후회고, 안 해도 후회니 해보고 후회할 거라는 합리적 선택을 하든, 한 남자를 만나 지고지순한 평생의 사랑으로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하고 싶다는 순애보적 선택이든, 독거노인으로 고독사보다는 죽을 때 한 사람쯤 옆에 있으면 좋겠고 거기에 살면서 남카(남편카드) 사용이 부가혜택으로 주어지면 더 좋겠다는 경제적 선택이든, 또는 부모와 친척과 사회가 모두 작정하고 종용하는 탓에 떠밀린 선택이든 모두는 제각기 이유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한다. 그리고 결혼생활 20년이 넘은 나의 개인적 결론은 아직 한국에서 결혼은 여자들에게 더 힘든 제도라는 거다.
지난 주말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그냥 시댁 가는 길에 간단하게 읽을 책 하나를 골랐는데 쉽게 술술 읽힐 줄 알았던 내 생각은 틀렸고 그 안에 담긴 우리 모두의 현재진행형 사연들로 가슴 한가운데가 체한 듯 묵직하게 남아있다. “우리 나이로 서른네 살의 김지영입니다”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적어도 34살 이상 살아온 여자들 삶보다는 34살의 김지영은 좀 많이 다르길 막연히 원했던 나의 무책임한 상상을 깨버린다. 나는 수많은 김지영 씨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어렵게 들어간 첫 직장에서 처음 한 일은 선배들 커피 심부름과 식사 메뉴를 정하는 일이었고, 어느 날 문득 사무실을 둘러보니 부장급 이상으로는 여자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아이를 가졌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다가 결국은 퇴사하고 육아를 책임지며 오롯이 아이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 속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된 우리 주위에 있었던 수많은 김지영 씨들.
“김지영의 첫 직장에서 만난 유일한 여자 팀장인 김은실 팀장은 여자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회식 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도 늘 자원했고, 아이를 낳고도 한 달 만에 출근했다”
“월급 대부분을 베이비시터에게 쏟고도 늘 동동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남편과 매일 전화로 싸우고, 급기야 어느 주말 아기를 업고 사무실에 나타난 후배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미안하다는 후배에게 팀장은 어떤 말도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놈의 돕는다는 소리 좀 그만할 수 없어? 살림도 돕겠다. 애 키우는 것도 돕겠다. 내가 일하는 것도 돕겠다. 이 집 오빠 집, 오빠 살림 아니야? 애는 오빠 애 아니야? 왜 남의 일에 선심 쓰는 것처럼 그렇게 말해”
부부싸움에서 늘상 등장하는 돕겠다는 이야기, 유치원 방학 기간 아이를 둘봐 줄 곳을 찾다가 결국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로 출근한 후배의 미안해하던 얼굴, 주말 근무와 야근과 출장이 많은 일들 때문에 결국 그만둔 동료들이 김지영 씨로 떠올랐다. 김지영 씨들의 현실세계에서 2006년에 10.22%인 여성 관리자의 비율이 꾸준히 그러나 아주 근소하게 증가해서 2014년에 18.37%가 됐다. -2015년 고용노동백서, 노동부, 83~84쪽 참고.
아직 열 명 중 두 명이 되지 않는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통계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보다 평균 36%나 임금을 적게 받습니다. 여성이 승진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30대 그룹 임원 중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2.4%, 유리천장 지수 역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꼴찌 수준입니다. (중략) 경제 활동에 있어서 남녀 차별의 벽을 허물겠습니다. 블라인드 채용제와 여성청년 고용의무할당제를 도입해서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을 촉진하겠습니다. ‘성평등 임금 공시제도’ ‘성별임금격차 해소 5개년 계획’ 수립으로 남녀 간 임금 격차를 OECD 평균 수준인 15.3%, 그 수준까지 완화하겠습니다”고 했다. 정책은 젠더정의의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그 길에 수많은 김지영 씨들을 다독이며 연대할 힘들이 필요할 것이다.
“처음에는 자랑스러웠는데 여자 동료와 후배들이 회사를 나갈 때마다 혼란스러웠고 요즘은 미안하다고 했다. 회식은 사실 대부분 불필요한 자리였고 잦은 야근과 주말 근무, 출장은 인원을 보강해야 하는 문제였다. 출산 육아로 인한 휴가와 휴직도 당연한 것인데 후배들의 권리까지 빼앗은 꼴이 됐다”는 나를 포함한 김은실 팀장들 고백과 정책적 제도적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 지영이 많이 힘들 거야. 저 때가 몸은 조금씩 편해지는데 마음이 많이 조급해지는 때거든, 잘한다. 고생한다. 고맙다 자주 말해줘”라는 아픈 김지영을 대신해 말 해 주는 따뜻하면서 강력한 연대 행위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