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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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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918년, 지금으로부터 꼭 1100년 전 우리 역사에서 첫 번째 통일국가인 고려가 건국됐다. 우리는 ‘OO 몇 주년’이라는 것에 익숙해 있다. 특히 5년, 10년, 100년 단위의 이른바 ‘꺾이는 해’ 주년에는 관심이 많다. 또 임진왜란 7주갑(2012년), 동학혁명 2주갑(2014년) 등 60년 단위의 주갑(周甲)이라는 단어도 많이 쓴다.
그런데 올해 고려 개국 1100주년은 대중적인 관심사가 아니어서인지 다를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지난 8월 초 양산시립박물관에서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교원직무연수 프로그램의 주제가 ‘고려 개국 1100주년 기념 고려의 문화유산’이었는데, 나도 이때 처음 들었다. 역시 박물관이 지역에서의 정보와 문화의 발신지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프로그램에서 나는 현장 해설을 맡았는데 연수 주제에 맞춰 양산박물관 전시품 중 특히 고려와 관련 있는 문화재를 중심으로 준비하여 해설했다. 이때의 해설 내용을 간략하게 우리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현재 전시 중인 고려시대 관련 유물만 언급한다.
우선 지명을 보면 통일신라시대인 757년 이후로 양주(良州)라고 하던 것을 고려 태조 때인 940년 양주(梁州)로 개칭했다. 인물로는 삼조의열 중의 하나인 김원현 장군과 박창이 있다. 김원현 장군은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고려 문종 때 양주 방어사에 임명됐을 때 낙동강에서 양산으로 진격하는 왜적의 군선 190척을 무찔렀다고 한다.
박창은 효자리비(碑)의 주인공인데 고려 우왕 때 진사를 지낸 양산지역의 대표적인 효자다. 부모상을 당하여 깊은 골짜기에 여막을 짓고 밤낮으로 애통해하고 있는데 왜구 3명이 칼을 들고 와서 그 연유를 물었다. 박창이 사정을 말하니 왜구도 감동해 그냥 돌아가므로 3년상을 마칠 수 있었다. 후에 정려와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재조본 대방광불화엄경 권제20 목판본이 있는데 재조본이란 새로 판각한 재조(再雕)대장경 목판으로 찍은 책이라는 말이다. 초조(初雕)대장경은 고려 현종연간에 거란의 침입을 당해 판각했는데 1232년 몽골의 침입으로 목판은 다 소실되고 목판본 책만 일부 남아있다. 이때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다시 판각한 것이 재조대장경인데 현재 해인사 장경판전에 보관돼있는 통칭 팔만대장경이 그것이다.
청자흑백상감운학문매병이라는 귀에 익은 이름의 고려청자도 있다. 비슷한 이름의 유명한 국보 제68호 상감청자를 연상하고 실물을 보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 같이 전시된 정병과 반구병 등 3점의 고려청자와 함께 한참을 보고 있으면 또 다른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다. 금동사리병과 청동향완도 있다. 모두 몇 안 되는 고려시대의 유물이다.
삼강행실도는 원래 조선 세종 때 충신, 효자, 열녀 각 110명의 행실 그림에 설명을 곁들여 간행한 책인데, 박물관에 전시된 판본은 성종 때 수정되고 한글 번역이 추가된 언해본이다. 여기에는 각 35명씩 수록되어 있는데, 고려시대의 인물은 정추, 이재오, 정몽주, 길재, 누백, 최씨, 열부 등 7명이다. 현재 박물관에는 효자 ‘누백포호(婁伯捕虎)’편이 펼쳐져 전시되고 있다. 고려의 한림학사 최누백이 15살 때 아버지를 잡아먹은 호랑이를 찾아가 복수하고 뱃속에 있는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장례를 치르고 3년을 시묘하였다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현재 전시 중인 고려시대 문화재를 간략하게 소개했는데 우리 시민들이 꼭 양산박물관을 방문해 직접 살펴보시기를 권한다. 고려 개국 11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토ㆍ일 오후 2시에는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아도 우리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으실 수 있고 다른 시간에도 예약된 해설과 겹치지 않으면 기꺼이 해설서비스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