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토포필리아 양산학(梁山學)..
오피니언

토포필리아 양산학(梁山學)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8/09/04 09:24 수정 2018.09.04 09:24














 
↑↑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田 소장
ⓒ 양산시민신문 
한 달에 한 번씩 머리 손질을 위해 찾아가는 신기동에 위치한 S미용실. 그곳에서 나는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흩어진 지역의 기억을 주워 담는 시간도 갖는다.


“요사이 양산 돌아가는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로 시작하는 원장님과 대화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 각자가 기억하는 양산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소환해내곤 한다. 다른 삶을 살아왔던 두 사람이지만, 그 예전 풍경을 기억하며 장소 하나하나마다 얽힌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면 ‘양산’이라는 ‘토포필리아(Topophilia, 場所愛)’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물음을 가져본다. 우리 양산에 지역학(地域學)이 존재했던가? 민선 7기 출범과 함께 우리 양산에도 지역 현안에 대한 시민 관심과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가시화하고 있음을 SNS를 통해서도 감지하지만, 지역학을 이야기함에서는 어떤가?



2010년을 전후해 지방화 시대와 급속한 세계화 물결이 지역학 출현을 재촉하며 전국 광역지자체를 중심으로 지역학을 수립했다. 가까이에 영남학, 부산학, 경남학, 울산학, 대구경북학이 있다. 이러한 지역학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지리,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지역의 미래를 모색하고자 하는 종합적인 학문이다.



최근 양산시립박물관(관장 신용철)에서는 개관 5년 차를 맞아 양산의 인문, 지리를 비롯해 역사, 인물, 문화유산까지 상세 정리해 두 번째 상설전시도록을 발간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반갑고, 감사한 일이면서도 한편으론 시민사회의 한계를 직시하기도 한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학술적으로 정리하거나 실증적, 통계학적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자료학 수준에 그치지 말고, 연구 결과의 공유를 통해 실제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지역학은 향토사학자 등 전문가들 전유물이 아니다. 정치, 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만의 몫도 아니다.



다른 사례를 이야기해본다. 창원지역학 아카데미가 마산YMCA 주최로 시작했다. “사람들과 함께 평생학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이 일이 나는 참 좋다”라는 민간 기획자의 이야기가 와닿는다. 열심히 기획한 프로그램에 창원시라는 행정이 후원했단다. 더할 나위 없는 민ㆍ관 협치(協治) 구조다.



2년 전 부산문화재단에서 총서 시리즈로 발간한 ‘부산의 점포’는 세탁소, 이발소, 시계방, 자전거 수리점 등 세월을 머금고 솜씨를 담은 점포 이야기를 통해 부산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좋은 사례를 보여줬다.



아울러 제안을 해본다. 양산이라는 특정 장소에서 오랫동안 삶을 이어온 사람들이 만든 유ㆍ무형의 자취를 담아내는 작업을 해 보면 어떨까? 단순 업소 소개, 맛집 소개가 아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대중목욕탕, 병원, 식당 등 30~40년 이상을 범시민 대상으로 업을 하며 느꼈던 희로애락과 그곳에서 받아들였던 양산의 변천사, 양산시민의 생활사를 기록하고 공유하는 작업이다. 어디에나 있을법한 이야기지만, 양산이어서 통용되는 이야기들 말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 해가는 도시의 모습에서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공통의 장소가 사라져간다. 오히려 변하지 않는 장소가 존속할수록 시민의 공통된 기억의 양이 증대하며, 그 기억은 이야기를 발생시키고, 그렇게 구축된 스토리텔링은 도시의 힘과 가치를 높여준다. 장소는 기억되고, 기억은 이야기를 만들며, 공유된 이야기들은 공동체를 만들어나간다. 장소가 공동체인 것이다.



문화적 지역 발전의 첫걸음은 지역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며, 지역학은 문화자치의 이론적, 실천적 논리를 제공한다. 때문에,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양산학 연구모임 활성화와 행정 지원 시스템 마련은 양산의 정체성 정립이자, 양산문화 발전의 전제조건이다.



북부동에 B치과가 있다. 내가 유치원 무렵부터 다녔으니 원장님을 알고 지낸 시간이 35년을 넘어간다. 당시에는 양산 번화가 골목에 있으면서 그 골목 흥망성쇠를 다 목격해왔을 것이다. 치료를 기다리며 들려오는 기계 소리와 치과 특유의 냄새가 바로 옆 중화요릿집의 달콤한 짜장면 냄새와 오버랩(overlap)되며 긴장과 평온을 함께 느끼고, 치료가 시작되면 썩은 이를 치료하느라 후벼 파는 기계들의 공포감과 온화한 원장님의 인술이 또 오버랩되던 장소와 사람의 관계를 인지하던 곳이다. 세월이 지나 이제는 그 치과에 내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토포필리아(장소에 대한 사랑): 중국계 미국인 지리학자 이푸 투안(Yi-fu Tuan, 段義孚, 1930~ )이 획일적이고 등질적인 공간보다 고유성, 개체성, 역사성을 지니며 거주자의 의식과 경험을 반영해 의미를 지니게 되는 장소(場所)에 대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리스어의 장소, 땅을 의미하는 토포스(topos)와 애착,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를 합성해 ‘장소애’라는 용어로 개념화했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