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숨진 아내가 필리핀에서 시집온 결혼이주여성이라는 것이다. 7년 전 결혼해 한국으로 이주했지만 현재까지 국적도 없고, 친정인 필리핀을 단 한 차례도 방문한 적이 없다. 이 같은 사실로 미뤄 아내 B 씨가 폭력과 차별, 억압과 통제 속에서 사망한 것으로 짐작돼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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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이에 양산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공동대책위를 꾸려 부조리한 국제결혼 제도와 출입국 제도의 모순 해결과 비극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안전망 구축을 촉구하고 나섰다.
양산시건강가정ㆍ다문화가족지원센터 등 10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한 ‘양산지역 이주여성 사망사건 대응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동대책위)는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들은 ‘결혼이주여성! 한국 땅에 살면서도 죽어서도 평등하지 못한 현실, 이 비극은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눈물로 문제 개선을 호소했다.
이들은 “숨진 B 씨는 한국에서 7년을 살았지만 한국 국적이 없고, 친정 한 번 가보지 못하고 추운 겨울에 난방도 제대로 안 된 집에서 살해당했다”며 “결혼이주여성이 가정폭력의 올가미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생존권인 체류(국적) 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적법에 따라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한국인 배우자와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2년 이상 계속해 거주했을 것’과 ‘한국인 배우자와 혼인한 후 3년이 경과하고 혼인한 상태로 대한민국에 1년 이상 계속 거주했을 것’을 명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본 자격 요건을 갖춘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필요한 서류를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제출하면 각 지역 사무소에서 체류동향조사를 거친 뒤 법무부에서 최종 적격심사를 하게 된다.
하지만 체류동향조사에서 남편이 조금이라도 결혼이주여성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거나, 결혼 진정성을 증명할 자녀가 없거나, 혹은 남편의 재정능력을 입증할 각종 서류 등을 첨부하지 못하면 국적 취득을 받지 못한다.
또한 B 씨의 경우, 이주여성을 지원하는 기관인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이용한 기록도 없다. 더욱이 지역 이주민 소통창구인 양산필리핀공동체조차도 B 씨가 이주해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공동대책위는 “결혼이주여성이 전입신고를 하면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방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며 “인권사각지대, 복지사각지대를 말로만 외쳐댈 것이 아니라 전수조사를 통해서 안전구축망을 형성해 또 다른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공동대책위는 양산시건강가정ㆍ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추모공간을 마련하고, 유가족이 시신 인도를 요청함에 따라 피해자 유해를 필리핀으로 보내고자 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후원계좌 843701-01-628056(국민ㆍ필리핀공동체).
한편, 양산시는 결혼이주여성 살해 사건과 관련해 양산경찰서, 범죄피해자지원센터 등 관계기관과 지난 11일과 13일 두 차례 비상회의를 열어 신속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유족 의사에 따른 시신 인도, 장례절차, 장례비용 등 지원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