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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동진 소토교회 목사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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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년 때 같은 반에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었다. 숙맥이라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하고 가슴앓이만 하다가 성탄절에 카드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내 딴에는 어떻게든 멋지고 예쁜 카드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집에서 무려 10km나 되는 길을 걸어 다니며 카드 파는 곳을 뒤졌다. 길을 걷다 문방구나 카드 파는 곳이면 다 들어가서 고르고 고른 끝에 정말 마음에 드는 예쁜 카드를 골라서는 거기에 진심이 담긴 몇 줄의 글을 써서 성탄절 아침 그녀의 집 우체통에 넣어뒀다. 물론 답장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게 좋아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그렇게 카드를 보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6학년 졸업하기 전 그녀가 내게 친구를 통해 성탄카드를 보내왔다. 친구 손을 통해 받아든 하얀 카드 봉투.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봉투를 열었는데, 내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냥 공책을 찢어 가운데를 접어 만든 카드에, 진심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그저 그런 인사가 연필로 적혀있었다. ‘이제 이딴 거 보내지 마!’라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이 더 분명하게 읽혔고,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하지만 난 쿨한 남자. 이후 다시 그녀에게 카드를 보내지 않았고, 매년 반복했던 카드 찾기 순례도 끝을 냈다. 지금은 그 아이 이름도 잊어버렸다.
나에게는 어린 시절 살짝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이 성탄카드는 1611년 마이클 마이어가 영국의 제임스 1세와 그의 아들인 헨리 프레데릭 왕자에게 보낸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후 18세기 영국 기숙학교 학생들이 성탄절을 맞이해 고향의 부모와 친구에게 카드에 그림을 그려 보냈으며, 성탄카드는 점점 대중화됐다. 그러다 1843년 영국의 ‘헨리 코엘’이라는 사람에 의해 성탄카드는 전환기를 맞게 된다.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장이었던 헨리 코엘은 당시 유명 삽화가였던 존 칼코트 호스레이에게 카드 그림을 부탁했고, 이 그림을 런던 홀본 워윅코트의 조빈스에게 맡겨 석판 인쇄로 찍었으며, 흑백으로 인쇄된 그림에 메이슨이라는 색채 전문가가 수작업으로 색을 입혀 완성했다. 이런 방식으로 코엘은 총 2천50장을 제작했고, 보내고 남은 카드는 1실링에 판매했다고 한다. 이렇게 제작된 최초의 크리스마스카드는 현재 12장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2005년 그중 한 장이 경매에 나와 9천파운드에 판매됐다.
코엘이 제작한 카드의 크기는 가로 12.5cm, 세로 7.5cm이며, 세 번 접도록 고안됐다. 양 날개에는 각각 헐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 주고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가운데는 포도주 잔을 든 크리스마스 파티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인쇄한 성탄카드는 영국에서 크게 유행했고, 곧 독일과 유럽 전역에 퍼졌으며, 30여년 뒤인 1875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처음 성탄카드를 인쇄한 것은 독일에서 이주해 온 보스턴의 인쇄업자 루이스 프랑이었다.(프랑은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카드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프랑의 카드에는 장미와 데이지, 치자나무, 제라늄, 사과 등의 꽃들을 조합한 정교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품질도 좋았지만 비싸지도 않아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렇게 성탄카드가 대중의 인기를 끌게 되자 가장 곤혹스러운 곳은 바로 우체국이었다. 연말이면 넘쳐나는 성탄카드로 비명을 질렀고, 워싱턴의 한 우체국장은 성탄카드 배송을 제한해 달라고 의회에 탄원하기도 했다.
이제 성탄카드를 보낼 때가 됐다. 최초의 성탄카드에는 어떤 인사말이 적혀있었을까?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 to you” 우리말로 번역하면 “성탄과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다. 이 문구는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성탄 인사말이기도 하다. 올해는 어떤 인사말을 적으면 좋을까? 개인적으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는 성탄을 알리는 성경 구절 하나가 마음에 쏙 들어온다. 평화, 그렇다. 예수님 덕에 이 땅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길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