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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석 카페사회사업가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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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청년’이라는 말을 들으면, 걱정부터 한다. 청년 실업자가 많다고 언론에서 이야기하고, 실제 취업하기가 너무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청년이라는 단어에 우리는 ‘이해불가’를 이야기한다.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업종에는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말한다. 요즘 청년들은 배가 불렀다고.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는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지만, 가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른들 시선에서 청년은 부모의 희생 아래 배불리 먹고 공부를 다 마친 성인의 모습이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자녀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지못해 선택하는 일은 원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에서 학과를 졸업하고 관련 일을 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필자의 전공인 사회복지학을 예를 들자면 졸업 후 취업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10년 뒤인 지금은 소수의 사람만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했다고 모두 자기 일을 찾는 건 아니다. 전공학과를 졸업해서 취업했다고 해도, 조금 더 길게 보면 청년 시절(34세 이하)은 끊임없이 자신의 직업과 정체성을 찾는 시기일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는 짧은 한마디에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갖는 환경과 사회변화는 ‘변했다’는 말 말고는 와 닿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필자는 독자들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 “청년들을 본 적이 있는가?” 몇 가지 답을 예상해본다. “학교나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겠지”, “회사나 공장에서 일하고 있겠지”, “밤에 번화가를 가면 젊은 사람들이 술 마시며 노는 모습을 볼 수 있지”라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굳이 청년들만의 것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뒤의 두 답을 빼면 되고, 중장년층은 앞 질문만 빼면 될 것 같다. 물론 예외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다시 질문해 보겠다. “마을 청년들을 본 적이 있는가? 동네 청년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청년의 이름을 대분류로 가정하면, 청년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그리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 혹은 동네 청년이라고 분류를 좁게 한다면 청년은 우리 주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집 청년, 혹은 이웃집 청년이라고 더욱 좁게 한다면 청년은 내 삶이 된다.
내 삶과 청년을 비춰본다면, 내가 보내온 시절이 되거나, 내가 보낼 시절이 될 수 있다. 세상 복잡한 이야기 속에서 청년이라는 이름 말고, 내 삶에서 청년의 의미를 가지고 본다면, 청년들 삶에 눈물 흘리지 못할 사람들이 없을 것이고, 지지하고 격려하지 못할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이는 청년뿐만 아니라, 노년도 그럴 할 것이다.
끝으로 두 가지 안내로 ‘마을의 청년’을 찾을 볼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하나는 남부시장에 있는 청년상인몰 ‘흥청망청’이다. 양산시민이라면 남부시장을 모를 수 없고, 이용 안 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남부시장 2층까지 올라가 본 시민은 정말 소수일 것이다. 그런 공간에 청년들이 모여서 장사하고 있다. 그것이 잘한 일인지 못할 일인지는 접어두고서라도 그곳에 가면 청년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면서도 성장하려고 하고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양산 청년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고 본다.
또 하나 소소서원에서 양산 출신 인디가수 성해빈 씨 정규앨범 발매공연이 있다. 성 씨는 그전에 ‘32번 버스’라는 타이틀로 음원을 발표한 적 있다. 32번 버스는 북정~증산을 운행하는 노선이다. 이날 공연에서는 양산 출신이면서 서울에서 인디음악을 하는 뮤지션으로서 이야기도 들을 수가 있을 것 같다. 한두 해 전에 소소봄에서 작은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성 씨의 말을 빌자면, 음악을 하면서 처음으로 고향에서 한 공연이었다고 했다. 그때 기억이 추억이라고 했다. 필자는 그 추억 이야기를 그의 기타와 목소리로 다시 듣고 싶다. 그것이 내 마을 청년이기에 더욱 그리워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