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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안전한 슬라임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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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안전한 슬라임도 있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9/02/12 09:28 수정 2019.02.12 09:28

 
↑↑ 박동진
소토교회 목사
ⓒ 양산시민신문  
필자가 관리하는 작은도서관 체험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이 바로 ‘슬라임’이다. 어느 때부턴가 슬라임을 하게 해달라 요청이 많이 들어와서 도대체 뭐길래 아이들이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가 하고 찾아봤더니, ‘슬라임은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며,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고, 창의력을 키워주는 신종 놀이문화’라고 소개한다. 놀이라는 말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그래서 증산에 있는 유명한 슬라임 카페를 찾아갔다. 

여기서 솔직히 문화충격을 받았다. 일단 비용이 만만찮았고, 그래서 받아든 슬라임이라는 것이 마치 끈적거리는 아교나 실리콘 같았다. 내 생각에 차라리 집에서 밀가루를 반죽하거나, 지점토를 이용해서 노는 게 더 안전해 보였고, 이걸 이 정도의 비싼 비용과 금쪽같은 내 시간을 들여 해야 할 일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게 재밌나?

그래서 슬라임을 만들고 있는 아이들을 유심히 관찰해봤다. 아이들은 직접 만든 슬라임을 마음대로 늘이기도 하고, 붙이기도 하고, 색도 입히고, 온갖 악세서리와 스티커까지 붙여가며 자기만의 창작물을 만들어 간다. 진지하면서도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행복한 표정이 눈에 읽힌다. 그래서 나도 따라 해봤다. 내가 만든 슬라임을 계속 조물거리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고, 잡생각이 사라진다. 촉감이 좋아서인지 기분도 좋아지고, 이게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계속 만지게 된다. 가벼운 운동도 되고, 또 창작이 필요한 활동이다 보니 두뇌 운동도 되는 게 치매 예방에도 적당한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 찰흙이나 지점토와는 또 다른 느낌, 이래서 슬라임 광풍이 불었구나 이해가 됐다.

그런데 이 슬라임이 철퇴를 맞았다. 국가기술표준원은 시중에 유통되는 190개 슬라임 제품을 수거해 조사한 결과 76개 제품에서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는 가습기 살균제에 쓰였던 화학물질이 검출됐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시중에서 판매하는 액체괴물과 슬라임 30종을 구입해 분석한 결과 25개에서 붕소 화합물이 유럽연합(EU) 기준치를 초과했다는 논문을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발표했다. 슬라임을 만들 때 여러 재료가 서로 잘 섞이도록 붕소를 사용하는데, 이게 기준치의 최고 7배가 넘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붕소 화합물은 독성이 있어서 어린이들이 이 물질에 반복적으로 과다 노출되면 생식기능에 악영향을 주고, 정상적인 성장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고 했다. 한 순간에 슬라임은 ‘유해물질 덩어리’로 인식됐고, 언론은 이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슬라임의 인기는 가루가 되도록 부서져 버렸고, 전국에 있는 900여개 슬라임 카페와 원료를 만드는 수십 개 기업이 고사 직전에 놓여 있다.

그런데 여기에 반전이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이 유해하다고 밝힌 76개 제품 가운데 74개가 중국에서 수입한 저질ㆍ저가 상품이고, 1개는 국적 불명, 1개만이 국내 제품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114개 제품은 안전한 제품인데, 언론은 이를 외면해버렸다. 그리고 서울대에서 발표한 실험도 전문가들은 그 유해성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슬라임에 들어간 성분인 붕사(Na2B4O7·10H2O, Borax)는 소독제나 연고 등에 쓰이는 약알칼리성 붕산나트륨염으로 붕소 화합물 가운데서도 위험성이 낮은 것이다. 고농도가 아니라면 피부 노출로는 그리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대부분 국내 제품은 국내 아모스 풀을 기본으로 천연 또는 식용색소와 국가통합인증마크(KC)를 획득한 부자재를 사용하고, 어떤 제품은 붕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제품도 있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한 카페의 제품은 쌀과 전분이 주요 원료이며, 나머지 원료 모두 안전성검사를 통과한 것이라고 한다.

요즘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 사업하기 정말 어렵다고 한다. 이럴 때 성공할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하나 개발하는 게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자산이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질 위기에 처해있다. 언론이 190개 가운데 76개가 유해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그만큼 애를 썼다면, 이제 나머지 114개 슬라임 제품은 안전하며, 슬라임은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놀이문화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도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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