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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田 소장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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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초가 되면 십이지(十二支)의 동물에 비유해 긍정적 의미를 더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난 무술년(戊戌年)의 황금 개띠해에 이어 올해 기해년(己亥年)에는 황금 돼지해라며 돼지의 좋은 점을 부각해 복됨을 이야기하곤 했었다.
‘동물을 가족처럼’이라는 반려동물(companion animal) 시대에 개 이야기로 교육을 이야기해 보겠다. 애완(pet)에 담긴 장난감이라는 뜻을 넘어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미로 의식전환을 시도하고자 1983년 오스트리아의 국제심포지엄에서 처음 제안하며 점차 우리나라도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이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한다.
반려동물(개, 고양이, 토끼, 햄스터, 앵무새 등)이 늘어나면서 강아지 유치원, 반려동물 호텔, 카페, 장례식장 등 관련 산업도 점차 늘어가는 추세다. 지난해 우리 시에서도 한 시의원이 반려동물 복지정책 확대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반려동물 놀이터를 제안한 바 있다.
그렇지만, 현실은 반려동물 1천만 시대에 유기견보호센터마다 버려지는 동물이 넘쳐나고, 강아지 공장이 전국 곳곳에서 횡행하며 최근 동물권단체 ‘케어’의 사건이나 분양해온 강아지가 배설물을 먹어(식분증) 환불요구에 거절당하자 내던져 죽인 사건 등 함께의 반려가 아닌 인간의 욕구에 충당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수난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말에 ‘개’라는 낱말이 붙은 것에는 좋은 뜻이 별로 없다. 개에 관한 속담도 많은데, 대부분 상대 허물에 대해 꾸짖거나 비판할 때 비유로 주로 사용하며, 심한 욕을 할 때도 제일 많이 쓰이는 접두어가 ‘개’일 것이다. 그만큼 우리와 삶을 함께 하는 동물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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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후 9개월 된 문화교육연구소 田의 반려견 ‘제이(J)’와 숲길을 산책하면서 계곡에서 찍은 사진.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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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김해의 한 가정에서 생후 3개월 된 강아지를 분양받아왔다. 아이들과 함께 커 갈 가족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자 데려오기 전부터 나의 성씨 ‘전(田)’의 영문 이니셜 ‘제이(J)’라는 이름을 붙였다. 래브라도 래트리버라는 대형견이라 미리 큰 집을 만들고, 개에 관한 상식을 겸비하기 위해 책도 사서 읽고 했었다. 데려온 지 반년이 지나가면서 덩치가 점점 커져 이제는 아이들보다 훨씬 크고, 먹는 양도 엄청나며, 그에 맞게 배설 양도 많으며, 냄새와 털 빠짐 때문에 연구소 입구에서 키우다가 급기야 연구소의 끄트머리에 대형 사육장을 다시 만들게 됐다. 힘도 엄청 세서 아침 산책하러 나갈 때면 성인인 내 힘으로도 감당하기 버거울 때가 많다. 데려온 지 반년 만에 ‘끝까지 책임지고 잘 키울 수 있을까?’ 은근 걱정이 더해간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연구소를 찾아오는 아이들은 도시의 좁은 아파트에서 작은 강아지들을 보다가 확 트인 자연에서 큰 개를 마주하며 반가움을 표시한다. ‘제이(J)’도 덩치는 크지만, 아직 9개월 된 강아지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아직 유치원생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을 보면 반갑다고 온몸으로 격하게 반응을 보이며 유대감을 표시한다.
아이들에게 있어서도 그 존재감은 특별한가 보다. 지난 활동 때 동화작가 선생님을 연구소로 모셔 아이들과 동화 만들기를 했다. 이야기의 출발이 ‘제이(J)’로 시작한다. 어른들 시선으로 보면 얼토당토않을 법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이어나간다. 화자가 ‘제이(J)’가 돼 개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교육을 받는다. 그 속에서 끊임없는 질문들과 마주하지만, 대부분 질문은 맞느냐 틀리느냐? 성공이냐 실패냐? 등 학교와 사회가 정한 대부분을 복습하는 일일 것이다.
인간이 단지 생물학적으로 자란다고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음으로써 인간이 된다. 개인이 교육을 통해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갈 기본 능력을 기른다면 사회 또는 국가는 교육을 통해서 사회 전체의 건강과 잠재력을 키운다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교육은 잘못되면 인간에게 큰 손해를 끼친다. 똑똑하지만 돈이 많지만 사회에 악이 되는 인간들을 우리는 많이 목격해왔다. 자유경쟁 속에서 이기기 위해 온갖 비인간적인 행위를 벌인다. 교육은 개인의 행복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간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이제는 질문이 옳은지 그른지부터 생각해봐야 한다. 나의 삶은 정의로운가? 나는 인간으로서 정중한 대접을 하고, 대접을 받고 있는가? 나는 하나의 존엄체로 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계를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인간은 ‘개 같은’, ‘개보다 못한’이라는 욕을 한다. 반대로 개의 경우 그들의 세상에서 ‘인간 같은’, ‘인간보다 못한’이라는 비유가 있다 할 때, 인간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개, 개, 개…’ 개가 웃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