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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 넌 배알도 없냐?..
오피니언

[청소년이 행복한 사회] 넌 배알도 없냐?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9/03/05 10:35 수정 2019.03.05 10:35

 
↑↑ 김선희
양산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상담팀
ⓒ 양산시민신문  
지난해 학교폭력 외부 전문위원으로서 활동할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학교폭력 업무를 맡아 왔지만 사후 징계인 특별교육과 개인 상담 위주 업무만을 하다 직접 대책위에 참여해 가ㆍ피해자측과 학교측 얘기를 들어보니 각자 입장이 더 잘 이해되고, 더 종합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 가지 현상이 눈에 띄었는데, 아이와 부모의 대응과 반응이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나 아이가 어릴수록 그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여기 A라는 초등학생이 있다. A는 또래 친구들로부터 따돌림과 폭행을 당했다.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격분했고, 그 모습에 A는 더 기가 죽었다. 자기가 잘못해서 부모가 화가 났다고 생각한 것이다. 부모는 학교에 강력히 항의하며 학급 교체와 가해 아이들의 접근금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했고, 학교측은 피해자측 요구 조건을 이행했다. 가해자측도 학교 조치에 따랐다.

시간이 좀 더 흘러 A는 가해했던 친구들과 놀고 싶어졌다. 그러나 A의 부모는 “넌 배알도 없냐?! 그 나쁜 아이들과는 놀지 마!”라고 허락하지 않았고, 가해했던 아이들도 “안 돼! 우리 엄마가 이제 너하고는 놀면 안 된다고 했어. 너하고 놀면 법을 어기는 거라고 했어”라며 거부했다. A는 이유도 모른 채(아무도 A에게 제대로 이해하도록 설명하지 않았고, A의 동의도 받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거절을 당했고 다른 아이들에게까지도 같이 놀면 피곤해지는 아이라는 기피 대상이 됐다.

아이와 어른은 사건을 받아들이는 깊이도 폭도 다르다. 기본적으로 아이는 어른보다 단순하다. 그리고 어른보다 회복력이 빠르다. 어른은 자기가 입은 피해를 계속해서 기억하면서 미움의 감정과 경계의 마음이 오래 가지만 아이는 곧잘 잊어버린다. 오늘은 싸워서 그 친구가 밉지만, 내일이면 다시 놀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유연하고 탄력성도 훨씬 좋다. 이 부분을 어른은 ‘배알도 없다’고 얘기한다.

앞서 A의 부모가 왜 그렇게 했는지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얼마나 충격이겠으며, 내 아이가 다시는 상처를 받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튼튼한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런데 그 바리케이드가 너무 견고하다 보니 아이가 갇혀 버리게 생겼다. 이건 아이가 원치 않은 바리케이드일 수 있다. 또한 의도치 않게 2차 가ㆍ피해 상황이 돼버리기도 한다. 양쪽 부모 모두 이 점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고 아이가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어떻게 도움을 줄지 고민이 필요하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 참석하면서 안타까운 것은 당사자인 아이가 아직 미숙하고 어리다는 이유로 배제된 채 어른만 서로 설왕설래하면서 일을 끌고 갈 때가 많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인정하고 정당하게 값을 치르고 만회할 기회를 부여하고 그 과정을 격려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인 것이다. 어른이 격분하면 아이는 더욱 움츠러들게 되며, 대책위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억울해하면 그 감정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돼 억울한 마음이 계속해서 지배하게 된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결정이 100% 내 마음에 차지 않을 수 있다. 각자 입장이 다르고 주장이 대립하기 때문이다. 수용하든, 거부하든 선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게 어른인 내 문제가 아니란 것이다. 나의 선택과 그 일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모가 대신 학교에 다녀줄 수도 없고, 친구를 대신 사귀어 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대신해줄 순 없지만 아이의 속도와 뜻에 맞춰 옆에서 같이 가줄 수는 있다.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언제라도 네가 힘들 때 이렇게 엄마, 아빠에게 얘길 해주면 엄마, 아빠가 너를 도와줄 수 있다”고 하면서.

어떤 일에는 나쁜 것만 있지 않다. 분명 잘한 것도 있고 덕분에 아이와 소통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잘한 부분을 인정해주고 ‘그런데 이거는 네가 좀 실수를 한 것 같다. 다음엔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하며 만회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을 제시해 주고 그것을 따르는 아이를 다시 격려해주는 그 과정이 참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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