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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석 교수의 경제 산책] 강제징용과 배상책임, 일본에게..
오피니언

[남종석 교수의 경제 산책] 강제징용과 배상책임, 일본에게만 있는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9/04/02 10:27 수정 2019.04.02 10:27

 
↑↑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사회연구소 연구교수
ⓒ 양산시민신문  
지난 2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4인이 제기한 신일본제철(현신일철주금)을 대상으로 한 강제징용 배상판결문에서 신일본제철은 피해자 4인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과거 일본법원은 태평양전쟁 (구)일본제철이 당시 국가의 ‘회사경리응급조치법’에 따라 강제징용을 한 것이기 때문에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한국 대법원은 그 판결을 뒤집고 신일본제철의 배상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이 판결은 국제법상으로 논쟁이 될 것이 자명하다. 1965년 수교당시 한국정부는 일본 정부가 3억달러의 무상원조와 차관 2억달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그 이후 일본정부와 일본 민간기업 등에 대해 일체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조약을 체결했다. 이 무상원조금은 공식적으로 식민지에 대한 손해배상금이 아니라 일본이 주는 ‘독립축하금’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경제성장을 위한 종자돈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에 강제징용 피해자들이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더 이상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조약한 것이다.

이 돈은 어떻게 쓰였나? 아시다시피 일본으로부터 들어 온 자금은 한국 경제개발을 위해 쓰였다.

박정희 정부는 이 자금을 기업 투자를 위해 대출하거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투자했다. 또한 원조에서 외채로 전환된 시점에서 이 자금은 일부 외채 상환을 위해 쓰였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은 한국을 배후지로 삼아 수출성장을 꾀했고, 한국은 수출자유무역지대와 같은 정책을 통해 일본 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했다. 이는 한국 정부의 외화벌이 수단이 된다. 1960년대 후반부터 기획된 한국의 중공업화 정책은 일본 기업들의 기술지원에 의존해서 이뤄졌다. 삼성전자, 엘지전자, 현대자동차 등 현재 한국 주력 대기업들은 거의 모두 일본 기업과의 기술제휴를 통해 새로운 산업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1980년 이후 부품 국산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부품의존도는 낮아졌지만 한국의 주요 제조업에 투입되는 자동화 기계는 아직도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필자가 굳이 이런 내용을 언급하는 이유는 20세기 현대사에서 한일간의 관계는 매우 다층적임을 보이기 위해서다. 한국정부가 일본으로부터 받은 5억불은 한국 경제성장의 종자돈 기능을 했다. 뿐만 아니라 강제징용과 성노예 여성에 대해 일본에게 더 이상의 손해배상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대한민국 정부였다.

그러므로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노동자들과 일본 성노예 여성 희생자들에 대한 1차적인 배상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다. 수십 년간 정부는 그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었다. 경제성장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제 강점기 피해자들은 없는 존재처럼 취급됐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나 성노예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배상이 지체된 것에는 한국 정부의 정책과 그 정책으로부터 혜택을 본 한국 사회에도 있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2000년대 들어와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과 일본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요구가 사회적으로 부상하면서 정부는 강제징용자들에 대한 배상과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지원해 왔다. 그러나 그 규모는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일본의 침략주의와 그로부터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일본정부의 공식사과는 마땅히 있어야 한다. 더불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책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나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국면에서 정작 한국정부와 우리 사회의 책임 방임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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