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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일왕(日王)? 천황(天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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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日王)? 천황(天皇)?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9/04/09 09:06 수정 2019.04.09 09:06

 
↑↑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양산시민신문  
이달 30일 아키히토(明仁) 현 일본 천황이 퇴위하고,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황태자가 새 천황으로 즉위한다. 한일 양국의 국내 사정은 어떤 형태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고 때로는 매우 불행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이번의 일본 천황 양위도 역시 우리에게 어떤 형태로든 영향이 파급될 것이다. 이 골치 아픈 이웃 나라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오늘은 ‘천황’이라는 호칭 문제, 매우 예민하고 무거운 주제이지만 가볍게 터치해보자. 일본국헌법 제1장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이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의 총의에 기초한다’고 규정돼 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일본에서 그 왕을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는데, 국내에서는 언론을 비롯해 보통 일왕(日王)이라는 호칭으로 낮춰 부르고 있다.

일제 식민 지배의 쓰라린 경험이 있는 한국인에게 일본 천황제는 불편하기 그지없는 제도다. 현 천황 증조부인 메이지(明治), 조부인 다이쇼(大正), 부친인 쇼와(昭和) 천황 시대에 걸친 35년간 식민 지배로 인해 수많은 한국인이 생명과 재산을 잃었고 급기야 남북 분단 상황까지 초래하게 됐다. 당연히 현 천황을 보는 눈길도 고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천황’이라는 단어를 일본 군주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문자적으로 우리보다 상위 개념의 의미로 해석해 즉각적인 거부반응이 튀어나오는 것 같다. 국가원수 호칭은 해당 국가에서 규정하는 공식 호칭을 따라주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다. 그것이 대통령이든, 국가주석이든, 국무위원장이든, 그리고 천황이든 마찬가지다. 천황이라고 불러준다고 해서 한자 天과 皇의 문자적인 의미를 인정하고 나의 천황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일본에서 그것이 공식 호칭이기 때문에 국제외교 관례를 따르는 것일 뿐 그 이상 의미는 없다.

이런 국제적인 관례를 애써 무시하고 유독 특정 국가의 원수를 낮추어서 부르는 것은 어른스러운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이것을 우리 속에 내재돼 있는 일본 콤플렉스의 발현이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한다.

우리도 한때 천황이라고 호칭하던 때가 있었다. 교과서나 위안부 문제 등 비뚤어진 역사인식에서 불거져 나오는 외교적 분쟁이 반일 감정을 자극해 천황 호칭도 천황, 일왕, 일황 등으로 왔다 갔다 했는데, 밉든 곱든 일국의 국가원수 호칭이 그렇게 감정에 따라 변하는 것은 합리적이고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상대 수준이 저급하다고 하여 우리도 스스로 수준을 낮춰서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 그들의 과거 인식을 우리가 강제로 바꿀 방법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언젠가 이 칼럼을 통해 졸고 ‘일본 콤플렉스’에서 주장한 바 있지만, 고대 한반도와의 관계에서 콤플렉스 덩어리인 일본이 뿌리 깊은 한반도 콤플렉스에 떠밀려서 임나일본부, 왜구, 임진왜란, 식민 지배, 위안부, 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온갖 못난 짓을 하고 있는데, 그 콤플렉스 덩어리 일본에 대해 또 콤플렉스를 느끼는 더 못난 짓은 하지 말자.

올해로 광복 74년, 이제 일본 콤플렉스는 뛰어넘어야 한다. 지구상에서 우리만큼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국민은 없지 않은가. 예전처럼 콤플렉스를 느낄 이유가 없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대범하게 천황이라고 불러주는 것은 어떨까. 혹시 천황이라는 호칭은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독자가 있다면 ‘부른다’가 아니라 ‘불러준다’라는 표현에 유의해주시기 바란다. 전략적으로 ‘불러준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전략적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한다.

참고로 일본 언론에서 헌정사상 최초의 양위라고 제목을 뽑았는데, 일본에서 삼권 분립에 의한 헌정이 시작된 1952년 이후 현 천황은 불과 두 번째 천황이다. ‘헌정사상 최초’ 운운하는 것은 일본사회 특유의 호들갑스러움 정도로 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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