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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20년 넘게 훔쳐본 아이들 마음과 글이 나를 성장시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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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게 훔쳐본 아이들 마음과 글이 나를 성장시켰죠”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입력 2019/05/14 11:57 수정 2019.05.14 11:57
[김진희 화제초등학교 교사]
두 번째 시집 ‘거미에 기대어’ 출간
학교, 마을, 아이들 이야기도 담겨

폐교 위기 시골학교를 행복학교로
직접 만든 교과서 수업도 ‘한 몫’
아이들이 주인공인 진짜 교과서
“교과서 만들면서 교사가 성장해”

김진희 화제초등학교 교사가 두 번째 시집을 발간했다. 2011년 ‘굿바이, 겨울’에 이어 8년 만에 ‘거미에 기대어’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시집에는 소박하고 겸손하지만 은은한 아름다움이 그렁그렁 고여 있다. 하지만 김 교사의 시집에 더욱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아이들의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 양산시민신문


대학 시절부터다. 김 교사가 시 쓰는 행복을 알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교직에 몸담은 후에도 펜을 놓지 않았다. 2006년 ‘경남작가’ 신인상을 받고 그렇게 시단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거미에 기대어’는 4부로 구성했다. 생활 시, 사회비평 시, 감정 시 등과 함께 3부에는 학교 이야기를 담았다. 학교, 학교가 있는 마을, 아이들, 아이들의 생활과 생각이 시의 주제이자 심상이다. ‘범진이’, ‘정희네 집’, ‘사랑이 넘치는 유안이’, ‘소희 일기’, ‘준영이 화분’, ‘어린 스승’, ‘구언이’, ‘지원에게’ 등을 읽고 있으면 아이들의 순수함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 김진희 교사가 지난달 발간한 두 번째 시집 ‘거미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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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생각하며 시를 쓰다 보니, 나 스스로가 정화되는 기분이었어요. 글을 쓰는 것이 마냥 행복했던 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죠. 교직생활을 하며 아이들 마음과 아이들 글을 20년 넘게 훔쳐보며 살았어요. 이제는 아이들에게 갚는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위한 동시를 한 번 써 보고 싶어요”

“행복학교는 선생님을 아이들에게 온전히 돌려주는 학교다”

김 교사는 행복학교 교사다. 6학급의 작은 시골학교인, 그래서 폐교 위기까지 갔던 화제초를 ‘전학 가고 싶은 학교’로 만든 숨은 공신 가운데 한 명이다. 2015년 행복학교에서 올해 행복나눔학교로 지정되면서 화제초는 명실공히 미래학교 모델을 만들어가는 양산지역 행복학교 거점학교가 됐다.

여기에는 김 교사가 직접 만든 ‘지역화 교과서’가 한 몫 톡톡히 했다. 일률적인 출판사 책이 아닌 교사가 직접 만들고 아이들과 수업을 통해 완성해 나간 진짜 ‘아이들 교과서’다. 2017년부터 3년간 무려 4권의 교과서를 만들었다.

교과서에는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이 등장한다. 마을 풍경과 소소한 학교 이야기도 담겼다. 내 이름과 친구 얼굴, 내가 사는 동네가 교과서에 고스란히 실려 있는 것이다. 교과서 이름도 참 행복스럽다. ‘가나다라마을길 걷기’,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만지고 오! 감동하는 내 몸 나의 꿈’.

↑↑ 김진희 교사가 직접 만든 ‘지역화 교과서’. 2017년부터 3년간 무려 4권의 교과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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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김 교사가 만든 교과서에는 교사의 욕심이 빠졌다. 최소한의 주제만 있을 뿐, 나머지 빈 공간은 아이들 몫이다. 아이들 그림과 직접 쓴 시, 직접 만든 동요, 찢어 붙인 색종이와 사진들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만들었다.

“아이들마다 속도는 다른데, 교과서 지문으로 아이들 성적을 줄 세우는 방식이 싫었어요. 어느 날 아이들이 마을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이 그림책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고 그래서 아이들, 마을 길, 학교를 그리다가 교과서에 싣게 됐어요. 나와 내 친구 이름, 학교 나무 이름, 우리 동네 길 이름으로 한글 첫걸음을 떼니, 아이들이 한글을 훨씬 쉽고 재미있게 이해해요”

이 교육은 ‘온 책 읽기’로 고학년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모든 학년이 한 학기 동안 책 한 권을 선정해 같이 읽고, 토론하고, 체험 활동도 한다. 분단시대 가난과 전쟁을 다룬 ‘몽실 언니’,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한 ‘똥깅이’ 등 독서 수준도 상당히 높다.

“행복학교는 선생님을 온전히 아이들에게 돌려주는 학교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행정 업무를 잘하는 교사가 능력 있다고 인정해 왔던 과거 학교 분위기를 바꾼 거죠. 자신이 만든 교과서로 아이들과 수업해 보면 교사 스스로가 달라진 것을 느낄 겁니다. 우리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과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교과서는 만드는 과정 자체가 교사를 성장하게 만든다고 확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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