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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칼럼] 기해동정(己亥東征) 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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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칼럼] 기해동정(己亥東征) 600년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9/05/21 09:05 수정 2019.05.21 09:05

 
↑↑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양산시민신문  
올해로 100주년을 맞은 3.1운동과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기념해 전국에서 많은 행사가 열리고 있다. 우리 지역 문화 발신지 역할을 하는 양산시립박물관에서도 ‘1919 양산으로부터의 울림’이라는 특별전을 개최 중이고, 또 해마다 우리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박물관대학도 ‘항일독립운동사’라는 주제로 강좌를 개설했다. 매주 목요일에 열리고 있는 이 강좌에는 부산, 울산, 김해 등 인근 시ㆍ도에서도 청강하러 올 정도로 반응이 좋다.

우리들이 어떤 사건을 기념할 때 특히 5주년, 10주년, 50주년, 100주년 등 이른바 ‘꺾어지는 해’에는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60년 단위의 ‘주갑(周甲)’도 있다. 경사스러운 일이든 치욕적인 일이든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곧 미래를 내다본다는 것과 통한다.

올해는 우리 역사에 매우 드문 해외 군사 작전인 1419년(세종 원년)의 기해동정(己亥東征), 즉 대마도 정벌 600년, 10주갑, 6세기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다소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 역사에서 사실상 최초의 해외 군사작전은 고려 말인 1389년 박위의 1차 대마도 정벌이고, 두 번째가 오늘 다루는 1419년 이종무의 2차 대마도 정벌이라고 할 수 있다.

고려 말에 극성을 부리며 왕조 교체의 주요 원인이 되기도 했던 왜구는 1392년 조선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강력한 군사적 응징과 회유책, 흔히 말하는 당근과 채찍 정책이 주효했고, 같은 해 일본의 남북조 내란이 종식되어 중앙 권력의 통제력이 회복되면서 다소 수그러들었다.

이 시기 주 침구 무대를 중국 연안으로 옮겨간 왜구들은 오며 가며 조선 연안을 노략질해 왜구 문제는 조선ㆍ명ㆍ왜 삼국 초미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급기야 명은 직접 일본 정벌을 거론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조선은 상왕 태종의 주도로 왜구의 소굴인 대마도 정벌을 결정하고 이종무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1만7천여명의 정벌군을 파견해 대마도 정벌을 단행했다. 이른바 기해동정이다. 혼쭐이 난 대마도는 이후 경상도의 속주가 될 것을 청하고 신하의 도리를 다할 것을 약속했다.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어쨌든 그랬다.

600년 전의 이 사건이 오늘날 우리 상황과 흡사한 일면이 있기 때문에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구사했다는 점인데 주목해야 할 것은 채찍이 있고 나서 당근이라는 것이다. 고려 말 이후의 화포 개발을 포함한 수군 강화로 강력한 응징이라는 채찍을 한 손에 쥐고 있었기에 다른 한 손으로 내민 당근이 먹혀들었을 것이다. 이때 당근(회유책)으로는 일정한 제한 하에 식량, 거주 허가, 관직, 무역권 등이 주어졌다.

둘째로는 적시에 주도적이고 선제적으로 움직인 결단력이다. 만약 명나라가 먼저 군사를 일으켰다면 조선은 거기에 종속돼 병력과 재정, 전후 처리의 막대한 부담을 떠안아야 했을 것이다. 당시 조선으로서는 남쪽 왜구보다 북쪽 여진에 더 치중해야 할 입장이었다. 명의 출병 전에 선제적으로 나선 전략적 판단은 태종이 무인 출신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셋째는 능숙한 외교 수완이다. 대마도가 속해있는 규슈(九州) 절도사에게 대마도의 왜구 행위에 대한 응징 이외의 영토 욕심은 전혀 없음을 이해시켜 본토 군사력을 묶어두었고, 왜구에게 영향력이 있는 호족 별로 행한 맞춤형 외교도 한몫했다. 한두 줄로 간단하게 설명할 내용은 아니지만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렇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상대를 압도할만한 힘을 가지고 당근을 내미는 것인가, 그리고 뛰어난 결단력과 외교력으로 상황을 선점하고 주도해가고 있는 것인가. 초거인들 틈에 끼어 작은 한 몸을 지켜나가야 하는 입장에서 그 이름이야 이중외교든 등거리외교든 줄타기외교든 다 좋다.

600년, 10갑자, 6세기라는 크게 꺾어지는 해를 맞은 1419년의 대마도 정벌에 주목하는 이가 없는 것 같아서 이번 달 열린 칼럼 주제로 다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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