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석 장군(1395~1461)은 조선시대 태종과 세종 때 무관을 지낸 삼장수(징석ㆍ징옥ㆍ징규) 가운데 장남이다. 왜구토벌과 여진족 침범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워 종1품인 승록대부 양산군에 책봉되기도 한 인물이다.
이징석 장군 묘지는 명곡동 83-1번지에 있다. 일대 4만4천800㎡가 양산 이씨 문중 땅으로, 장군 부부 묘와 자식 묘, 재실 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양산의 역사적 인물이 묻혀 있는 곳이라고는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리가 소홀하다.
명곡마을 입구에서 묘지로 가는 600m 진입도로는 차량 교행이 어려울 만큼 좁은 데다, 안내 표지판이 없어 찾기도 쉽지 않다. 또 묘지로 통하는 나무계단부터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 있고, 묘지 주위는 벌초도 안 돼 있다. 표지석과 위패, 호위석 등은 이끼가 잔뜩 끼어 앞뒤에 적힌 글자가 잘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명곡마을 주민이 직접 나서 이징석 장군 묘지를 관광자원화해달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열린 중앙동 시장과의 소통간담회에서 “장군 묘지에 대한 관리가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며 “역사적 가치가 높은 만큼 청소년들의 역사교육장이자 관광시설로 조성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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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석 장군은 17세 때 무과에 장원급제해 내금위장과 보위장군 대호군자, 경상도 병마절도사 등을 거쳐 종2품인 가정대부 동지중추원사에 오른 무장이다. 왜구토벌과 여진족 침범에 대비한 4군 설치 초석을 마련하는 공을 세워 세조로부터 종1품인 승록대부 양산군에 책봉됐다.
부친 이전생에 이어 부자가 양산군에 책봉되면서 양산 이씨의 뿌리가 됐다. 66세로 생을 마감하자, 세조가 직접 지은 제문에서 장강이라는 시호를 내렸고, 이때 제문이 국보로 지정됐다. 이 같은 이징석 장군 관련 문서로는 왕지 4점, 국왕 유서 1점, 세종이 하사한 사패교지 3점과 제문 1점 등 모두 9점이 보물 1001호로 지정돼 있다.
더욱이 둘째인 이징옥 장군(1399~1453) 사당은 경주 신계리에, 셋째인 이징규 장군(1403~1468) 묘지는 창녕군 장마면에 각각 마련돼 있다. 때문에 이징석 장군 묘지는 삼장수 가운데 유일하게 양산에 소재해 있어, 관광자원화를 통해 역사적인 재조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이다.
이에 대해 양산시는 “묘지로 통하는 길에 나무데크를 설치하고, 재실 앞에 주차장을 조성하는 등 방문객 편의를 위한 추가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다만 묘지 하나만으로 일대를 공원이나 교육장으로 조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