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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사회연구소 연구교수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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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산업화는 대규모 기업집단인 재벌기업 주도로 이뤄졌다. 우리는 재벌이라고 하면 중소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제품 단가 인하와 기술탈취, 문어발식 확장을 통한 지배력 확대, 재벌 계열사 내부 일감 몰아주기 등 부정적 기능에 익숙해 있다. 모두 맞는 주장이다. 그러나 세상이 꼭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한국 제조업은 조립가공을 통한 수출 중심으로 성장해 왔다. 설계기술이나 중간재를 일본이나 독일에서 수입해서 이를 조립 가공해 최종재를 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초기 조립가공은 이미 만들어진 여러 부품을 단순히 조립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기술 수준이 높지 않았고, 최종 공정을 통해 완성한 제품의 순부가가치도 높지 않았다.
이런 조건에서 재벌로 표상되는 한국의 기업집단은 후발주자로서 선진국을 추격하는 데 매우 효율적인 체계로 작용했다. 재벌기업들은 특정 성장 단계에서 수익률이 가장 높은 계열사를 통해 이윤을 축적하면 이를 새로운 사업 분야, 새로운 계열사 확장을 위한 자본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산업 분야로 계열사가 진출하면 이미 다른 계열사가 확보하고 있던 인적자원(엔지니어), 제조공정 노하우, 설계기술 등을 지원했다. 또한 세계시장 개척을 위한 시장정보와 판매경로를 제공하고 물류관리를 지원했다.
최종재를 공급하는 시장을 확보하면서 재벌기업들은 한편으로 하청업체들에 중간재 공급시장을 제공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간재를 공급하는 부품계열사를 설립하고, 이들의 기술력을 높여 주요한 공급라인을 구성해 왔다. 이와 같은 방식은 기업 간 거래 관계에서 작용하는 불확실성, 거래 비용을 줄이면서 효율적인 공급라인 구축으로서 의미가 있다. 또한 중간재를 공급하는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세계시장에 중간재를 수출을 촉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재벌계열사 기업들은 모회사라는 확실한 중간재 납품시장을 확보하기 때문에 공격적인 설비투자와 연구개발투자를 할 수 있었다. 기업으로서는 확실한 수요처를 확보함으로써 투자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종재를 생산하는 모회사로부터 설계지원을 받거나 경쟁업체 기술과 정보를 제공받는 등 다양한 자원을 지원받음으로써 계열기업 내부로 빠르게 기술 확산이 이뤄졌다.
이와 같은 재벌기업군의 성장은 한국 수출주도 산업 내부에서 독특한 가치사슬을 만들어 왔다. 최종재를 생산하는 모회사는 계열사를 가치사슬의 전반부에서 후반부에 이르는 전 과정에 배치함으로써 가치사슬 전 과정을 통제한다. 최종재는 계열사를 비롯해 공급기업들이 공유하는 플랫폼이며, 계열사는 고부가가치를 낳는 핵심부품을 납품하도록 배치한다.
더불어 협력 중견기업, 중소기업으로부터 중간재를 공급받는 구조다. 협력기업들이 재벌기업에 납품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비용경쟁력,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 수출주력 기업들이 생산하는 최종재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그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협력기업 기술력도 높아야 한다. 협력기업들은 재벌기업들에 중간재를 납품하면서 기업 규모와 기술력을 동시에 높여 왔다는 말이다.
재벌기업의 성장은 동시에 협력기업의 성장을 견인하기도 했다. 한국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핵심 세력은 대부분 재벌에 납품하는 기업들인 것만 봐도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재벌기업과 협력기업들은 수탈적인 측면과 공생의 측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한국 산업생태계의 성장은 그 긍정성을 확장하고 부정성을 축소하는 것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