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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사회연구소 연구교수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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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무역 보복 조치가 있은 후 한일 간 역사전쟁이 재현되고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다들 식민지 지배와 태평양전쟁 전범국가로서 일본의 역사적 범죄에 대한 사죄를 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잘못이기에 앞서 미국에 역사적 책임이다. 그런데도 진보주의자들은 미국의 전후 재건에는 침묵한다. 오로지 일본만 문제 삼는다.
미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떨어뜨릴 때만 해도 일본의 전범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자 했으며 일본 내 진보세력과도 제휴하려 했다. 그러나 동유럽 공산화와 중국 본토 공산당 약진을 보면서 일본 재건으로 방향을 튼다. 일본 군소정당들을 자민당으로 합쳐 정권을 안정화하고, 노동운동 내 좌익을 척결하거나 추방하고, 닷지(Joseph Dodge) 플랜을 통해 일본 경제를 재건한다. 일본 상품에 대해 미국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 기업의 일본 투자를 통해 달러를 공급한다. 전범재판을 하지만 기업들은 기소하지 않는다. 미국은 일본 재벌(자이바쭈)은 해체하되 계열체계(케이레츠)는 그대로 유지하도록 한다. 경제를 재건해야 공산화를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일본을 군사동맹으로 포섭하고 미국이 일본 방위를 책임진다.
유럽에서도 동일한 일이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마셜플랜(유럽재건계획)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건설이고, 서독을 유럽안보동맹에 가입시키고 재무장한다. 반공주의 동맹이다. 트루먼은 이를 위해 냉전을 발견한다. 미국 의회는 독일과 일본 재건을 위한 재정 투입, 미국 시장 개방, 미국 기업들의 현지 투자에 대해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다. 트루먼은 소련의 약진과 공산화에 대한 두려움을 과장해 미국 의회를 설득한다. 그래서 냉전 연구자 가운데 일부는 ‘냉전’을 발견함으로 전후 질서가 재편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독일, 일본 모두 기업들은 자국 파시스트들의 팽창주의 전략을 지지했고 그로부터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미국이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군사ㆍ안보, 경제동맹을 더 중시했기 때문에 유럽과 동아시아 재건을 지원했다. 동아시아는 당연히 일본 중심 재건이었고, 그 배후지가 바로 한국과 대만이다. 한일외교수립과 한국의 산업화는 그 과정에서 이뤄진다. 그 이후 일본은 미국을 눈부시게 추격하고, 한국은 일본과 독일, 미국을 추격했다.
그런데 한국의 자유주의자들이 해방 후 70년이 지나서 전범기업을 소환하며 역사범죄를 이야기하는 것은 과연 설득력이 있는가? 미국이 만들어 낸 전후 자유주의 질서에 동승해 승승장구하고선, 일본 전범기업을 역사의 법정에 소환하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자유주의자들이 일본 전범기업들을 소환하려면 미국 중심 전후 질서 재건의 문제점을 비판해야 한다. 미국 중심 재건으로 인한 혜택은 모두 봤으면서 그 혜택의 일부였던 ‘일본의 재건 과정’을 문제시하는 것을 필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재벌들 상당 부분은 진보주의자들이 ‘전범기업’이라고 여기는 일본 기업들의 기술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 결과 재벌기업은 한국의 핵심 기업이 됐다. 재벌은 전범기업과 동맹이자 하위파트너였다.
그런데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하니 갑자기 “한국 기업들 힘내라”고 외치고 있다. 거의 코미디 아닌가? 이 논리적 비일관성을 유일하게 정당화하는 것은, ‘한국이 식민지 지배의 희생자’였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이다. 희생자였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정당하다는 논조다. 그 과정에서 혜택은 ‘망각’한다. 국사란 어떤 의미에서 ‘집단 기억의 창조’의 결과다. 불리한 것은 망각하고 유리한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