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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열린 칼럼] 누가 이 청년을 모르시나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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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칼럼] 누가 이 청년을 모르시나요(2)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9/08/20 09:02 수정 2019.08.20 09:02

 
↑↑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양산시민신문  
누가 이 청년을 모르시나요, 앳된 얼굴에 나이는 29세…

이름: 윤현진(尹顯振)
생몰년: 1892~1921
부(父): 윤필은(동래부윤 역임)
직업: 독립운동가(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차장)
출생지: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168번지
주요 이력: 1908(16세) 구명학교(龜明學校, 현 구포초등학교) 졸업. 1916(24세)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유학 후 귀국. 1917(25세) 의춘학원 설립, 양산소비조합 설립. 1918(26세) 경남은행 마산지점장. 1919(27세) 상해 망명, 통합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재무차장. 1921(29세) 급환으로 타계. 1962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1995 유해 봉환, 국립대전현충원 안장.
특기사항: -메이지대학 유학 중 김철수, 정노식, 장덕수 등과 열지(裂指)동맹 결성 -김철수, 장덕수, 중국인 황각 등과 비밀결사 신아동맹단 조직 -귀국 후 대동청년단 활동, 백산상회와 경남은행 설립에 참여 –상해 망명 후 김구, 안창호, 이시영, 여운형, 신익희, 이승만 등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 -임시정부에 독립자금 30만 원(현재 가치 300억 원 추산) 전달 -대한민국(임시정부) 최초의 국장(國葬) 엄수.

제목을 ‘… (2)’라고 한 것은 3년 전에도 같은 제목으로 이 지면에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면 사정 때문인지 그때는 앞부분 거의 반 정도, 지금 보고 있는 윗부분의 글이 잘린 채 실려서 제목과 내용이 따로 노는 다소 이상한 글이 돼버렸다. 

이달 초에 동료 해설사들과 함께 윤현진 선생 생가터를 다녀왔다. 예전에 갔을 때는 2층 개인 주택이 있었고 담 한 쪽에는 조금 훼손되긴 했어도 선생의 생가터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갔을 때는 그 집도 깨끗이 철거되고 안내판 같은 것도 하나 없이 그야말로 ‘터’만 덩그러니 남아 잡초만 무성했다.

생가터가 공장 부지에 편입돼 공장이 들어설 것이라고도 하고, 시가 매입해 생가 복원, 기념비 건립 등 공원을 조성할 것이라고도 한다. 우리 시민이 어느 쪽을 원할 것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기념공원이 되면 접근성은 다소 떨어지겠지만 장소성에서는 의미가 있다. 다만 이곳이 공장 지대라 주위가 큰 공장들로 둘러싸이면 모양새가 썩 좋을 것 같지는 않다.

생가 고증이 어려우면 걸맞은 외형의 기념관을 짓고 관련 유물 등을 전시하면 될 일이다. 다행히도 양산시립박물관에서는 지난 2016년 많은 노력 끝에 선생의 손자인 윤석우 옹으로부터 직접 기증받은 100여점의 유품과 희귀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 당시에 이들 중 일부를 최초로 공개한 바 있고 올해 삼일절과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에서도 공개했다. 2021년에는 선생이 가신지 100주년에 맞춰 특별전도 기획하고 있다고 한다.

유품 중에는 망명 후 1년 만에 양산의 어머니께 보낸 선생의 친필 편지, 당신의 호인 ‘右山’ 뿔도장, 부인 엄정자 여사의 사진, 일본 메이지대학 유학 시절의 사진, 동갑내기 절친이자 동지인 신익희 선생이 해방 후 국회의장을 할 때 선생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 기타 희귀 자료가 다수 있다고 한다. 질로나 양으로나 기념관 하나는 충분히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누가 이 청년을 모르시나요? 앳된 얼굴에 나이는 29세, 양산을 대표하는 청년 독립운동가, 암울한 시대에 불꽃처럼 29년의 짧디짧은 삶을 살다간 아름다운 청년 윤현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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