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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믿어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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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믿어주는 사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9/09/24 09:30 수정 2019.09.24 09:30

 
↑↑ 박동진
소토교회 목사
ⓒ 양산시민신문  
미국 여행 중 나이아가라 폭포를 여행한 적이 있다. ‘나이아가라’라는 말은 이 지역 원주민인 이로쿼이 인디언들 말로 ‘물벼락’이란 뜻인데, 폭포가 얼마나 크고 대단한지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장관이었다. 이 폭포에 수많은 도전이 있었다. 그중에 프랑스 곡예사 ‘찰스 블론딘’은 폭포 양 끝에 줄을 매달고서 그 위를 횡단하는 도전을 했다. 50m 높이에 무려 800m에 이르는 길이, 그저 보기만 해도 아찔한 그 외줄 위로 블론딘은 침착하게 걸었고, 마침내 성공했다. 그런데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긴 장대를 들고 건너기도 하고, 죽마를 타고 가기도 하고, 외발수레를 밀고 건너기도 하고, 심지어는 눈을 가리고 건너기도 했다. 블론딘의 묘기에 나이아가라 폭포에 모인 5천명의 관중은 환호했고, 또 그가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지 기대를 모았다. 블론딘이 그들에게 말했다. “제가 누군가를 등에 업고 저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그러자 사람들은 그렇다며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러자 그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누가 제 등에 업히겠습니까?” 방금 전까지 박수 치며 환호를 질렀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무도 나서질 않았다. 그런데 그 침묵을 깨고 “제가 업히겠습니다” 하며 손을 들고 나선 사람이 있었다. 바로 블론딘의 친구인 ‘워싱턴’이었다. 블론딘은 친구 워싱턴을 등에 업고 800m 외줄 위를 유유히 건너갔다. 

나이아가라 폭포 위로 외줄을 걸고 그 위를 걸어가고자 한 블론딘, 그의 도전은 사실 무모해 보인다. 그냥 세상 좀 쉽고 편하게 살고 싶은 사람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다. 곡예사로서 충분히 명성을 떨치고 있었던 그는 왜 이런 도전을 했을까? 일단 현실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고, 새로운 것을 해내 보이고 싶은 욕망과 그걸 대중에게 드러내 보이고, 더 큰 인기를 구가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은 자기실현에 대한 의지도 있을 것이다. 이것을 성격이라고 해야 할지, 기질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모험적인 태도는 그를 나이아가라 폭포로 이끌었고, 한 번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미션으로 도전했던 것이다.

‘내가 얼마나 더 잘 할 수 있을까?’ 용감해야 이런 생각을 갖고 새로운 미래에 도전할 수 있다. 왜냐하면 더 잘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전해서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고, 이 실패가 이전의 성공조차 다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성공한 사람이지만, 이후에는 실패자로 끝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블론딘은 그런 성공에 연연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더 잘할 수 있을지 발견해보고 싶은 탐험가였기에 불가능해 보였던 나이아가라 폭포의 외줄 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도 무명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실력이 달려서 제대로 된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그저 허드렛일이나 하며 눈물의 빵을 먹었던 세월이 얼마겠으며, 관중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이를 악물고 얼마나 훈련했겠는가? 그러다 한 번, 두 번 작은 성공의 경험이 좀 더 큰 도전을 하게 했을 것이며, 그리고 더 큰 성공의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때로는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겠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또 도전하여 마침내 성공했고, 그런 성공이 쌓여 마침내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준비했겠으며, 얼마나 실전과 같은 연습을 반복했겠는가? 성경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기쁨으로 결실을 거둔다고 한 것처럼 위대한 성공 이면에는 남몰래 흘린 눈물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었다. 블론딘이 ‘누가 내 등에 업히겠습니까?’라고 말할 때 ‘내가 업히겠소’ 하면서 손들고 나오는 친구 워싱턴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울컥 감동이 솟는다. 이런 친구의 믿음은 블론딘 혼자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새로운 모험에 도전하게 했다.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을 등에 업고 건너가는 도전, 이것은 이전에 그가 이룬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상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세상, 혼자만의 성공이 아니라 함께 이루는 성공, 믿어주는 사람이 있기에 가능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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