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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田 소장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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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보 범람의 시대다. 인터넷과 SNS라는 소통수단은 정보 확산에 더욱 기여해 남녀노소,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얻고 있다. 정보가 많아지면 우리 삶이 좀 더 좋아지는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럴까? 오히려 취사선택 폭이 넓어질수록 우리 삶은 더 단순화되고 더 폐쇄적으로 변화되고 있지 않은지 세속을 살아가며 버거움을 느낄 때가 많다.
또 실제로 많은 사람이 피상적인 정보 습득을 지식으로 혼동하는 경우도 있고, 많은 정보를 가졌다고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사회의 많은 현상에 마치 전문가처럼 가타부타하며 경계를 만들어가는 터무니없는 상황도 마주하게 된다. 그 경계의 한가운데서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이 세상물정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라면 우리 인생사가 참 고달프기만 하다.
각설하고 ‘터무니없다’의 어원을 찾아보면 ‘터의 무늬’라는 말로서 모든 터에는 고유의 무늬가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 혁명이 진행되는 이 시대에, 삶터와 일터가 분리되고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계속 사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면서 지역성을 잃어 가는 시점에 왜 터의 무늬를 이야기하며 지역성을 강조하는지, 지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지역 문화를 고민하는 한 사람으로 제안을 해 본다. 각자 소중한 생각과 삶은 선동의 대상이 될 수 없기에 지역 문화에 대한 필자의 나지막한 권유를 담아본다.
지난달 양산지역 문화자원의 창조적 활용을 위한 방향성 찾기란 주제로 ‘양산문화 발전을 위한 시민 토론회’를 진행했다. 토론회를 정리해보면 문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 민관 협치를 통한 장기 비전과 로드맵 마련, 대표 콘텐츠의 다각적 활용과 콘텐츠 개발 현대화, 문화 기획과 활동 인력 양성, 유기적 관계 형성을 위한 지역감정 문제 해결, 공익 목적의 연대(네트워크)를 위한 시스템 구축, 지원 이전에 자립할 수 있는 구조 개선, 문화시설 확충보다는 사람 키우는 것이 먼저 등이었는데 무엇보다 지역 문화 연구기능 활성화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싶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인데 제 각각 흩어진 구슬을 꿰기 위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문화정책은 정부나 지자체 같은 큰 단위에서만 설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 삶의 구조와 연관한 논의와 연구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문화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겠지만, 모든 것과 연관된 것이기도 하기에 정답은 아니더라도 삶의 구조와 문화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의견 제시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차원에서의 고민으로 내 지역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말이다.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과정을 통해 권력 상당 부분이 이미 대중 혹은 시민에게 있다면 지역사회에서는 좀처럼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수많은 지식인을 배출했지만 변화하는 사회에서 적절한 역할과 공간을 찾지 못한 이유도 있겠고, 지역사회의 왜곡된 구조도 한몫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지역사회에서는 특정단체나 특정인을 대표로 호명해왔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한 주체가 참여해 함께 고민하는 지점을 창출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다양한 정체성의 시민이 모여 자신의 일상과 고민을 나누면서 문제의식을 형성하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펼쳐내고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인 담론 형성을 위한 학습조직, 연구 작업으로 이어져야 한다.
지역에서 문화활동가의 정체성, 지식 연구자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많고, 도서관ㆍ카페ㆍ극장ㆍ식당ㆍ갤러리ㆍ복합문화공간도 많은데 연구기관은 부족하다. 지역의 문화를 고민해왔던 사람들이 지역의 다양한 공간들을 학습장소로 활용한다면 어떨까? 그리고 지자체 등 공공기관에서는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장을 확보해줘야 한다. 그래서 각각의 존재가 자신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서로 돕는 것이다. 이는 곧 공동체와 민주주의, 문화예술 등 다양한 영역을 발달시킴으로써 일상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확장해 나가는 것이라 하겠다.
아름다움이 ‘앎(알음)’, ‘아름(안음/포용)’, ‘아답다(나답다)’, ‘움(싹)틈’, 이라는 말에서 시작했다는 근원부터 되돌아보고 싶다. 아름다움의 본질은 아는 것일 수도 있고, 안아주고자 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자신의 속에 들어있는 것을 드러내며 자기답게 사는 것일 수도 있다.
‘지역이 가진 고유한 특색(나)을 발굴하고(앎), 재해석ㆍ재창조(포용)해서 그동안의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고와 감각을 깨우치는 것(움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