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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석 박사의 경제 산책] 한국 진보주의, 과거를 먹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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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석 박사의 경제 산책] 한국 진보주의, 과거를 먹고 살 것인가?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19/10/15 08:50 수정 2019.10.17 08:50

 
↑↑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학 박사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 양산시민신문  
한국사회 주류는 범진보로 교체되고 있다. 필자가 범진보라 할 때 민주당 내 개혁 세력으로부터 정의당, 시민사회, 노동운동 등 광범위한 개혁ㆍ진보 세력을 포괄한다. 한국 진보주의는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평등의식도 대단히 높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평범한 시민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그들은 ‘정의가 물 같이 흐르는 세상’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이 녹록지 않음을 우리는 안다. 노동연구원 홍민기 박사 연구에 따르면 김대중ㆍ노무현 정부 집권기 역설적이게도 한국 상위 10%의 소득 점유율은 대폭 상승했다. 상위 10%, 좀 더 넓게 상위 20%의 구성도 변했다. 20년 전 상위 10%라면 자산가나 지주, 재벌가나 부패한 관료, 고소득 전문직, 번성하는 자영업자라고 여겼다.

이제는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엘리트 대학의 80~90년대 학번들이 한국 상층 중간계급으로 진입했다. 대기업 노동자들, 공직 노동자들도 이제 상위 20%에 진입했다. 이들은 2000년대 한국 자본주의 도약기에 가장 큰 혜택을 본 집단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세계적 불황과 저성장 국면은 불평등을 더 확대시킨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 수요가 정체된 국면에서 자본 간, 국가 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기업들은 이윤 압박에 직면하며, 그에 대한 대응으로 노동에 대해 공격한다. 이때 대상이 되는 이들은 불안정 고용 노동자들,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세대들, 여성들이다. 반면, 자산소득자들 소득은 더 올라간다. 이것이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평등을 실현하고자 해도 정책적으로 이를 실현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진보주의가 사회정의와 평등을 외치지만 현실은 반대로 움직인다. 그들 자신이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돼 실질적인 개혁을 부정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이 상황에서 쉽게 빠져들기 쉬운 것이 바로 ‘평민’들의 분노를 돌리기 위해 ‘악’을 창조하려는 유혹이다. 한국 진보주의에 있어 악이란 누구인가? 그들은 바로 친일파ㆍ재벌ㆍ독재 체제 계승자들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그 정점은 당연히 박정희 정권과 후예들이다.

한국인들은 식민지 경험과 역사 학습을 통해 계속해서 일본 제국주의 경험을 되새김한다. 친일파는 민족의 적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늘 보수세력을 ‘친일파’로 호명한다. 일본과 갈등이 진행되는 국면에서는 이런 수사학이 더 남용된다. 불평등이 쟁점일 때는 재벌기업과 재벌노조를 비판한다. 재벌의 갑질만 없어진다면 한국은 평등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경제성장 국면에서 반대자들이 이룬 성과는 늘 폄훼한다. 그들은 개발독재와 재벌 중심 체제가 현재 한국 사회 위기의 근원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상대를 악마화해 자신의 정당성을 보장받으려는 측면이 없지 않다. 재벌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고 독재에 대한 비판도 필요하다. 그런데 비판은 반대나 부정이 아니라 성과를 분별하고 한계를 짚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온다. 상대의 성과조차 부정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반대다. 반대와 비판은 다르다.

친일파이든, 독재자든 그들이 무엇이든 이룬 성과는 냉정하게 인정하고 그 위에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구상이 필요하다. 상대가 이룬 성과를 반대만 하면 더 좋은 사회는 고사하고 그 성과마저 파괴할 수 있다. 이것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다. 진보란 한계를 넘어서는 대안을 만드는 것이지, 상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를 악으로 만들어 자기편을 결집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된 진보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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