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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석 부경대학교 경제학 박사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
ⓒ 양산시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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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발주한 ‘재벌개혁’ 관련 연구기획의 일부로 중간발표가 있었다. 필자가 맡은 부분은 기존 재벌개혁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나는 평소에 그의 재벌개혁론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고, 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난타전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토론 과정은 그보다 훨씬 난타전이었다. 필자는 재벌경제 시스템의 분석을 통해 그 성과와 한계에 주목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논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제했다.
박 교수는 나의 주장을 구닥다리라고 간단하게 무시했다. 그가 제기한 내용은 이렇다. 한국 경제 위기는 재벌 중심 수직계열화에서 비롯했고, 그 와중에 기술탈취, 단가인하로 하도급 기업의 고통이 만연했다고 한다. 한국 기업은 혁신성이 떨어지고, 재벌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계열사 배만 불린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21세기 새롭게 등장하는 경제체제에 수직계열화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한국 자본주의 위기를 재벌체제로 환원하는 것에 매우 비판적이다. 필자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세계 수요의 감소와 직결한 것으로 본다. 한국 생산체제가 효율적이라 해도 세계 수요가 감소하면 한국 자본주의는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국보다 비용경쟁력이 있지만, 기술력이 크게 뒤지지 않는 경쟁자가 꾸준히 세계시장에 진입한다. 오늘날 기술은 생산설비에 상당 부분 체화돼 있기 때문에 이를 도입할 역량이 있는 국가의 생산효율성은 빠르게 증가한다. 중국이 대표적이다. 과거 미국, 일본, 유럽 기업들이 직면한 현실이 한국에도 들이닥친 것이다.
수직계열화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수직계열화는 중간재 공급을 내부화함으로써 공급라인을 안정화한다. 이는 최종재의 경쟁력을 높인다. 계열기업들로 빠른 기술 확산을 이끌어 내기 때문에 중간재를 생산하는 부품기업 기술력도 동시에 올라간다. 더불어 공급라인을 안정화함으로써 선도기업의 생산기동성을 매우 높인다. 2000년대 이후 세계시장에서 한국 대기업들이 생산현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데 기여한다. 세계시장으로 진출은 한국에서 중간재 수요를 증가시킴으로써 협력기업들의 산출 증가와 고용을 증가시켰다.
그 과정에서 대기업들의 수요독점적 지위는 협력기업들에 대한 기술탈취, 단가인하를 통한 수탈을 동반했다. 중간재에 체화된 특정 기술은 최종재를 생산하는 기업에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다. 수요기업은 핵심부품 기술도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매입거래를 지속함으로써 공급기업이 이룩한 기술진보에 대해 보상한다. 더불어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거래가 지속된다. 단가인하는 중소기업 수익성 상승을 억제하지만 동시에 대기업은 공급기업의 매출액 확대를 보장함으로써 성장 유인을 제공한다. 이것이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들이 그렇지 못한 기업들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다. 당연히 대기업에 납품하는 기업들 규모나 기술역량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크다.
대ㆍ중ㆍ소기업 간 다층적인 관계를 보지 않는 주장은 단순한 선동일 뿐이다. 대기업에 대한 중소기업의 종속성 심화는 대기업 외에 다른 시장을 개척하지 않음으로써 나타나는 문제의 성격이 강하다. 이는 대기업의 요구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대기업조차 그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중소기업 스스로 기술역량을 높이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함으로써 다양한 시장을 개척하면 대기업에 대한 협상력도 높아진다. 기술탈취, 단가인하 문제도 회피할 수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기업에 대한 중소기업의 종속성은 줄어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