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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아무도 묻지 않는, 가슴 속에 묻은, 묻힌 동물 이야기..
사회

아무도 묻지 않는, 가슴 속에 묻은, 묻힌 동물 이야기

엄아현 기자 coffeehof@ysnews.co.kr 입력 2019/12/24 10:33 수정 2019.12.24 10:33
■ 환경과 인문학 강연ㆍ토론회
가축 살처분 문제 짚어보는 시간
살처분 매몰지 참혹한 현장 담은
<묻다>의 문선희 작가 초청 강연
“동물, 환경, 사람 모두에게 재앙”

해결방안 모색 위한 전문가 토론
“행정 편의주의 정책 되짚어 봐야”

ⓒ 양산시민신문

아무도 묻지 않은, 가슴 속에 묻어둔, 묻힌 동물들 이야기를 양산에서 시민들과 함께 우리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을 가졌다. ‘예방적 살처분’ 누구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후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기록한 리얼보고서 <묻다>의 문선희 작가가 양산을 찾았다. 

서형수 국회의원실(민주, 양산 을)이 주최한 환경과 인문학 강연과 토론회 ‘묻고, 묻고, 묻다’가 지난 17일 양산비즈니스센터에서 열렸다.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과 양산학부모행동, 해오름인문학교실, 우리동네작은도서관, 평화를잇는사람들, 채식평화연대 등이 공동 주관했다.

이날 서형수 의원은 “대한민국의 돼지 수는 약 1천200만마리, 닭은 1억6천만마리에 달한다. 이 동물들이 좁은 케이지 안에서 삶을 강요당하고 동시에 죽음을 강요당한다. 또한 돈으로 바꿀 수 없는 토양과 지하수가 오염 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해 가축을 매몰한 농촌지역 환경 문제에 대한 우려마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 의원은 이어 “오늘 강연과 토론회가 단순히 질문을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함께 지혜를 모아 생명존중의 원칙을 바로 세우고 환경의 회복을 위한 소중한 성과가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이 사진은 문선희 작가가 구제역과 조류독감 매몰지 3년 후를 촬영한 것이며, 사진 속 숫자는 그 땅에 묻힌 동물들 수다.
ⓒ 양산시민신문

가축 살처분, 그 민낯을 파헤치다

전국 동물 살처분 매몰지 가운데 100곳에 대한 기록을 담은 <묻다>의 저자 문선희 작가는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문 작가는 “2010년 겨울, 매일 산 채로 파묻히는 동물에 관한 뉴스가 보도됐다. 트럭에 가득 실려 온 돼지들이 구덩이 속으로 내동댕이쳐지고, 돼지는 공중에서 버둥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5개월 동안 무려 347만9천962마리의 동물이 파묻히는 비극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매몰지 4천799곳이 3년간 발굴 금지 후 고스란히 사용 가능한 땅으로 둔갑했다. 정말 사용 가능한 땅이 됐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무작정 매몰지를 찾아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장 사진을 보여주며 “현장을 찾았을 때, 동물 냄새는 분명 나는데 아무것도 없어 의아했다. 그런데 안쪽으로 더 들어가는 순간, ‘물컹’하고 땅이 꿀렁거렸다. 너무 많이 파묻어서 땅이 썩고 있었다. 혐오와 공포가 동시에 밀려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콩밭을 방문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돼지가 매몰된 현장을 찾았다. 할머니 한 분이 콩밭을 일구고 농사를 짓고 있더라. 가까이 다가가 대화를 하려고 하는데, 말문을 열 수 없었다. 농사를 지으려는 땅엔 돼지 뼈가 밭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며 참혹했던 현장을 떠올렸다.

예방적 살처분은 동물에게만 비극이 아닌 사람에게도 지독한 형벌로 남았다고 전했다. 그는 “누군가는 갓 태어난 새끼들까지 구덩이로 밀어 넣는 일을 해야만 했다. 2010년 겨울 현장에 투입된 인원은 총 100만명, 이 가운데 17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9명이 사망했다. 매몰 업무를 맡은 공무원 가운데 34.5%가 극심한 외상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을 겪고 있다. 그러자 정부는 2015년부터 살처분을 용역업체에 맡겼고, 이제 가난한 청년과 외국인 근로자가 살처분 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고발했다.

↑↑ 문선희 작가
ⓒ 양산시민신문

살처분, 행정 편의주의가 만든 비극

강연이 끝나고 이 같은 가축 살처분 문제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가 이어졌다.

좌장을 맡은 강재규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은 “어린 시절 시골마을 집집마다 가축을 키우면서 무언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는 모습을 흔히 봐왔다. 그 속에서 같이 생활하던 다른 가축 중에는 분명 견뎌내는 경우도 많았다.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건강한 가축들은 수십만,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해 매몰하는 정책에 대한 문제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어용준 나우동물병원장은 “생명 존중이라는 가치관 아래 현재 시행되고 있는 살처분 제도에 대한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 언론의 문제점 제기 후 소비자들의 냉철한 판단과 동물복지에 대한 공감이 이뤄질 때, 관련 법률과 제도가 바뀔 것이고 농장 구조 또한 동물 복지로 나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지현 채식평화연대 활동가는 “마음을 조금만 열면 가축동물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것, 지구에서 우리는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 저와 여러분 또한 사랑하고 싶어서 존재한다는 것, 그 마음을 여는 연결 지점을 찾는 데 오늘 이 시간이 소중히 쓰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명관 양산시민신문 대표는 “정부로부터 살처분이라는 행정 편의적인 발상을 바꾸게 하는 것은 환경론자들의 투쟁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생태문학이든 환경문학이든 인문학적 소양을 학습하는 것이야 말로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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