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석묘는 ‘돌을 고였다’해 고인돌이라고도 불린다. 청동기시대 대표적 무덤 형식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 무덤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석묘 아래에서 청동기 주요 부장품이 발견되기도 해 귀중한 매장문화재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행정당국 무관심으로 지석묘가 훼손ㆍ분실되는 사례가 전국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는 가운데, 양산지역 역시 지석묘가 방치되고 있는 정황이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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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립박물관 전시 중인 소노 지석묘 |
ⓒ 양산시민신문 |
‘소노 지석묘’는 상북면 소토리 434번지 일원 유물로, 1996년 창원대 박물관에서 시행한 지표조사에서 최초 발굴돼 학계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 소토리 일대에 경부고속도로 양산나들목과 자동차 정비공장 설립 등 개발공사를 진행하면서 2003년(경남고고학연구소), 2010년(한겨레문화재연구원) 두 차례 발굴조사를 시행, 소노 지석묘 일대에서 청동기~통일신라시대 묘와 토기 등이 다수 발굴됐다.
또 양산지역 역사ㆍ문화를 집필해 놓은 ‘양산군지’와 ‘양산시지’ 등에 따르면 소노 지석묘가 양산지역 삼대석 중에 하나로 여겨진다는 기록이 있다. 더욱이 현재 양산시립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양산 출토 유물 특별전시회에도 소노 지석묘가 소개될 정도로, 지역 역사문화계에 이미 잘 알려진 양산 대표 유물이다.
하지만 최초 발굴 이후 24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소노 지석묘에 대한 보존ㆍ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급기야 몇 해 전부터는 지석묘를 민간에서 이전해 인근 식당에서 화분 받침대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양산시는 “2010년 지석묘 일대 토지소유자가 공장 설립을 위해 의뢰한 ‘소노 지석묘 유적지’에 대한 지표조사 결과, 지석묘는 기록보존만 하면 되는 것으로 판명돼 별도 이전ㆍ복원 사업 등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때문에 사실상 지석묘는 토지소유자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어 행정에서 환수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노 지석묘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온 김규봉 전 양산문화원 사무국장은 “발굴조사를 통해 유구(묘)는 기록보전 후 그대로 매장하더라도 지표 위에 있는 지석묘는 역사적 가치가 인정된 만큼 박물관이나 공공기관에 이전해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심지어 당시 토지소유자가 양산시에 지석묘 처리를 문의하니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증언을 확보했는데, 지역 문화유산을 대하는 행정기관 태도에 큰 실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