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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명명백백(明明白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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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명백백(明明白白)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0/02/18 10:16 수정 2020.02.20 10:16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田 소장
ⓒ 양산시민신문
 
시대 변화나 나라, 사람에 따라 색채관이 다르기 마련이지만, 색깔에 대한 적절한 사용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며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는 경제적 측면과도 밀접한 관계를 이룬다. 최근 필자는 12년간 타던 차를 바꾸면서 차종, 디자인, 실용성도 중요했지만 어떤 색깔을 선택할까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고민해야 했었다.

또 최근에는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정당 간 신종 색깔론이 가열되고 있다. 정치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기존 색깔론이 아니라 정당을 상징하는 색깔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색깔이 가지는 의미는 우리 의식주는 물론 주변의 많은 것에서 생각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음과 양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한다는 ‘음양오행 사상’은 고대 동양에서 우주에 대한 인식과 사상을 정립한 원리로 해와 달의 음양과 지구의 구성요소인 나무(木), 쇠(金), 불(火), 물(水), 흙(土)의 5원소가 상호작용함에 따라 자연과 인간을 설명하고자 했다. 동(靑), 서(白), 남(赤), 북(黑)과 중앙(黃)의 다섯 방위를 색으로 나타낸 오방색은 고대문화에서부터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생활과 사상 전반에 뿌리내리고 활용해 온 상징색으로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소재로서 매우 훌륭한 콘텐츠다. 이러한 전통의 오방색 가운데 2020 경자년(庚子年) 쥐띠 해에 해당하는 흰색에 주목하며, 지역의 이야기를 하나 해 보고자 한다. 지난해부터 이 흰색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해 본 계기가 있었다.

백범(白凡) 김구 선생, 백야(白冶) 김좌진 장군, 백산(白山) 안희제 선생, 백농(白農) 이규홍 선생, 모두 아호에 ‘흰 백(白)’자가 들어간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검색해 봐도 마땅히 알 수는 없지만, 당대 거물급 독립운동가의 아호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미뤄 짐작해보면 “하늘 앞에 결백하다”, “나를 데려가도 좋다”는 마음을 드러내듯 자신을 바치는 의미, 혹은 무언가 버려두는 의미를 가졌을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그냥 다 드러내거나 바쳐버릴 만큼 구구절절한 시절을 살았던 시대정신이 ‘백(白)’이라는 글자에 오롯이 담겨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윽고 3월이 되면 독립운동가 선양사업을 도처에서 할 것이다. 지난해 우리 양산시의회에서 발의해 정례회 채택을 통해 독립운동가 서훈 요청을 청와대와 국가보훈처에 전달한 바 있다. 또 경남도의회에서도 독립운동 선양사업 지원조례 개정을 두고 토론회가 있었다. 그 핵심 인물이 우리 지역 백농(白農) 이규홍(李圭洪 1893~1939) 선생이다.

일제강점기 일광상회라는 위장 무역업을 경영하며,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고 1919년 만세운동 후 윤현진 열사와 상해로 망명해 임시정부 내무차장, 학무차장, 재무총장, 외무총장, 의정원 부의장, 국무원, 임시헌법개정위원, 새약헌기초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독립운동에 힘썼다. 폐결핵으로 귀국한 후 상북면 대석리 자택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병상에 계시다 타계했는데 생계유지 차원에서 아들과 처남 사업에 명의를 대여한 것이 친일 성향으로 비쳐 변절의 기록이 그 어디에도 없음에도 독립운동가로 대접받지 못하는 비운의 인물이다.

국가보훈처는 귀국 이후 행적을 명백히 밝히지 않으면 서훈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것이 과연 유가족이 해야 할 일인가? 나라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의 행적을 명명백백(明明白白) 밝혀야 하지 않을까? 우리 시에서도 범시민 차원에서 제대로 알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색깔을 생각하다가 흰색에 주목하며 지역의 역사인물을 되새김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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