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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경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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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칩 이야기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0/02/25 11:04 수정 2020.02.25 11:04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양산시민신문
 
오는 3월 5일은 24절기 가운데 세 번째 절기인 경칩으로, 우수와 춘분 사이에 들어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이 24절기가 음력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태양이 도는 궤도(사실은 지구가 돈다)인 황도를 15도 간격으로 24등분 한 각각의 지점이 24절기다. 즉 1년을 24등분 한 그 세 번째가 경칩이다. 아무튼 음력 아닌 양력과 관계있다는 말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맘때면 봄기운이 완연해지고 첫 천둥이 친다고 생각했다. 경칩(驚蟄)은 글자 그대로 땅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와 벌레들이 봄 천둥소리에 놀라 깨어나기 시작한다는 시기이다. 만물이 소생하고 우리 조상들도 농기구를 챙기며 농사 준비를 시작했다.

‘예기’ 월령에 ‘(음력) 2월에는 초목의 싹을 보호하고 어린 동물을 기르며 고아들을 보살핀다’고 했다. 그래서 경칩 이후에는 갓 나온 벌레나 갓 자란 풀이 상하지 않도록 불을 놓지 말라는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북을 치거나 집 안팎에 연기를 피워 잠에서 깨어난 뱀이나 벌레들을 집 밖으로 내보기도 했는데 이는 나중에 나쁜 기운을 내쫓는다는 벽사(辟邪)의 풍습으로 발전했다.

경칩에는 여러 풍속이 있는데, 이때쯤 낳은 개구리알이나 도롱뇽알을 먹으면 몸을 보하고 허리에 특히 좋다고 해 건져서 먹곤 했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누워서 들으면 한 해 일이 편하고 서서 들으면 그 반대라는 속신도 있다.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해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하고 빈대나 해충이 없어지라고 일부러 흙벽을 바르기도 하는데, 빈대가 많은 집에서는 재를 탄 물그릇을 방 네 귀퉁이에 놓아두기도 했다. 물론 요즘은 빈대도 사라졌을 뿐 아니라 개구리알을 먹는 이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도롱뇽은 포획이 금지된 보호종이다.

보리싹이 자란 상태를 보고 그해 농사 풍흉을 가늠하기도 하고 고로쇠나무 수액을 받아 마시기도 한다. 고로쇠 수액은 원래 뼈에 좋다고 골리수(骨利水)라고 불렸는데 우리 몸의 면역력 강화와 위장병, 신경통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다른 나무들은 보통 다음 절기인 춘분쯤에 물이 오르지만 남쪽 지방의 고로쇠나무는 일찍 물이 오르기 때문에 첫 수액을 마심으로써 한 해의 새 기운을 받는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고로쇠 수액은 우리 원동 배내골의 수액이 잘 알려져 있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올봄 원동지역 축제들이 모두 취소되면서 고로쇠축제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고 걱정들이 많다.

만물이 생동하는 경칩, 젊은 남녀들은 은밀하게 은행알을 서로 주고받고 나눠 먹으며 사랑을 속삭였다.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나가서 서로 보고만 서 있어도 열매가 맺힌다는 암ㆍ수은행나무를 돌면서 연정을 키웠다고 한다. 가히 현대 밸런타인데이의 원조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시대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방법은 있었나 보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이 직접 논에 들어가 쟁기 잡고 논갈이를 하는 권농 퍼포먼스를 했는데, 그날이 경칩 후 첫 돼지날(亥日, 올해는 3월 9일)이었다. ‘정조실록’에 ‘우수에는 삼밭을 갈고 경칩에는 농기구를 정비하며 춘분에는 올벼를 심고…’라고 한 것처럼 경칩은 본격적인 농사를 준비하는 절기인 것이다. 장황한 경칩 이야기는 그만하고 들어주는 이 없는 혼잣소리나 좀 해보자.

우수ㆍ경칩에는 추위에 얼어붙은 대동강물도 풀린다는데 코로나에 얼어붙은 우리네 속은 언제나 풀릴까. 미몽을 일깨워줄 봄 천둥소리는 언제나 울릴까. 언제 북치고 연기 피워 내 속의 삿된 것들을 쫓아낼까. 개구리알을 먹을까, 도롱뇽알을 먹을까. 개구리 울음소리는 누워서 듣게 될까, 서서 듣게 될까. 은행알은 또 누구와 주고받으며 마음을 확인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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