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기 고대 양산은 신라였을까? 가야였을까?’
양산시가 이를 밝히기 위해 적극 나섰다. 사적 제93호인 양산 북정리 고분군(梁山 北亭里 古墳群) 7호분에 대한 발굴조사에 착수한 것인데, 1920년 부부총(10호분)과 1990년 금조총(10-1호분), 2018년 9호분에 이어 네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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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13기의 무덤이 있는 북정리 고분군은 1963년 사적 제93호로 지정해 보존ㆍ관리하고 있다. |
ⓒ 양산시민신문 |
양산시는 지난 4일부터 오는 10월 말까지 3억원을 들여 북정리 고분군 7호분(북정동 706-1번지 일원) 980㎡에 대한 발굴(정밀)조사에 들어갔다. 발굴조사는 (재)우리문화재연구원이 맡았다. 고분군 7호분 내ㆍ외부 구조를 살피고, 가까운 부부총과의 관계 등을 조사해 5~6세기 양산지역 고분 양상을 밝힐 계획이다.
북정리 고분군은 삼국시대 양산지역 최대 규모 고분군으로 모두 13기의 무덤이 있다. 동시에 5~6세기 고분문화의 변천과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지로, 1963년 사적 제93호로 지정해 보존ㆍ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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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호분은 10호분인 부부총 규모의 대형 무덤으로 유물과 유구 등이 다량 발굴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 양산시민신문 |
북정리 고분군에 대한 최초 발굴은 1920년 일본에 의해서다. 당시 발굴한 10호분에서 국보급인 신라 금동관과 구슬, 토기, 동 화로 등 유물 800여점이 발견됐다. 특히, 한 무덤에서 부부로 짐작되는 남녀가 함께 발굴돼 ‘부부총’이라 이름 지었는데, 삼국을 통일한 신라 김유신 장군의 부친인 서현 장군과 모친인 만명 부인의 묘로 추정된다.
1990년 동아대박물관에서 발굴한 금조총은 10호분 아래 조그만 무덤이지만, 상당히 많은 유물이 나왔다. 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금(金)으로 만든 새(鳥) 다리가 특징적이라는 이유로 ‘금조총’으로 불리게 됐다.
이들 고분군에서 조사된 유구와 유물은 신라 문화에 가까워, 북정 고분군은 신라시대 유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평지가 아닌 구릉 정상부나 지형적으로 높은 중심지에 있다는 점이 가야 문화권일 가능성도 있어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래서 30여년 만인 지난 2018년 고분군 9호분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금제 말안장과 운주(말 장식구), 토기 등 160여점의 유물이 발견됐지만, 고분 덮개조차 남아 있지 않은 심한 도굴로 인해 권력자의 무덤이라는 추정 외에는 정확한 신분이 밝혀지지 않았다. 당연히 신라냐, 가야냐에 대한 정체성 의문도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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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호분 정상부에서 도굴갱이 발견돼 일부 훼손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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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올해 10ㆍ9호분 근처에 있는 7호분 발굴을 시작했다. 7호분은 9호분과는 달리 부부총 규모의 대형 무덤으로 유물과 유구 등이 다량 발굴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다만, 정상부에 도굴 과정에서 만든 갱이 발견돼 훼손 정도에 따라 조사 결과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