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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잣대(barome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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잣대(barometer)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0/07/21 14:01 수정 2020.07.21 02:01

 
↑↑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田 소장
ⓒ 양산시민신문  
근래에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 있다. ‘공신력’과 ‘증명’이 그것이다. 오히려 공신력은 공권력으로, 증명은 잣대로 나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는 하나의 결과물이다. 어떤 상대는 어떤 누구를 어떤 사람으로 규정하고, 어떻게 대할지를 무의식적으로 규정한 후 그에 맞는 말투나 태도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겠다. 이에 흥분했고, 본능적으로 전투 또는 방어태세를 갖추며 반응해 왔다.

역사드라마를 즐겨보는 나는 여전히 현실도피를 하며 TV 채널을 돌려 과거를 들여다본다. 그 과거가 800여년 전 고려시대 무신들의 권력 투쟁을 다룬 ‘무인시대’다. 저마다 대의를 외치며 칼을 뽑아 들지만, 힘의 논리 앞에서 믿음은 처참하게 도륙당하고 만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고, 오늘의 충신이 내일의 역적이 되는 시대. 백성을 위하고 사직을 위한다는 명분이 백성을 굶주리게 하고, 국정을 농단하고 있음은 이 시대에 전해주는 것들이 넘쳐난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던 21대 국회는 상임위 구성 앞에서 힘의 대결을 펼치느라 악전고투를 펼치고 전국 지방의회도 민선 7기 후반기 의정활동을 재개하기에 앞서 의장단 선거, 상임위 구성으로 고소, 제명, 탈당 등 감투싸움과 밥그릇 챙기기로 바람 잘 날 없다. 지역 발전, 지역 주민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당리당략만 난무하는 듯하다. 도무지 잣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식 이중잣대 앞에 국민마저 양분화돼 옳고 그름을 놓고 싸우기 일쑤다.

자신의 행동은 철저히 합리화하면서 타인의 논리는 규탄하고, 설득의 논리보다 유혹의 논리를 더 많이 양산해 내는 듯하다. 배려의 이름으로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있지는 않았는지, 원만한 관계를 위해 대세의 흐름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는지 갖가지 세상의 유혹에 시달리며 마음의 중심 ‘잣대’를 찾는 일이 중요하게 됐다.

‘무인시대’에서 차별 대우와 홀대에 폭발한 정변에서 이고는 이의방에게, 이의방은 정중부에게, 정중부는 경대승에게 죽임을 당한다. 경대승 요절 후 이의민이 권력을 잡지만, 또다시 최충헌에게, 최씨 정권의 최의는 임연-임유무 부자의 정변에 의해 제거된다. 임유무는 또다시 원종에 의해 제거되면서 무신정권 시대는 막을 내리지만, 결국은 고려를 망국으로 이끄는 지름길이 되고 만다.

이제는 왜 그런 결과물이 나왔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객관적인 관점을 확보함으로써 결과에 대한 원인을 찾는 과정이 중요할 것이다. 그 원인은 잘못 들이댄 잣대의 문제일 것이다. 이 잣대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차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차별은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라는 잣대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립하는 양쪽 의견이 모두 틀리거나 모두 맞다는 ‘양비시론’(兩非是論)의 잣대도 중요하지만, 이 논리는 모든 현상을 상대화하면서 회의적 가치관을 만들기도 한다. 옳은 것은 옳다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하는 ‘시시비비론’(是是非非論)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야 더욱더 정의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흑백논리로 왜곡하거나 자신에게는 관대하면서 타인에게는 냉혹한 공격의 잣대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이는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 제기, 답변 제시, 이견 제시, 증명의 과정 등 우리 사회의 다원주의적인 가치를 다양성의 잣대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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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칸트(Kant Immanuel, 1724~1804)는 인간 이성의 독단 즉, 잘못된 추론과 인식을 비판하는 논리로 변증법을 새롭게 해석했다. 헤겔(Hegel Georg Wihelm Friedrich, 1770~1831)은 이를 발전시켜 모든 것은 변화와 생성이라 가정하고 ‘추상(正, Thesis)-부정(反, antithesis)-확정(合, synthesis)’과 같이 전개된다고 봤다.

‘부정’(否定)에 의미를 둔 헤겔은 모순이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본 반면, 공산주의자 입장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대표적인 인물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1937~)는 ‘긍정’(肯定)을 긍정하고 확신하며 정당과 국가 바깥에서 세계를 무대로 정치혁명을 실천하는 긍정의 변증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역사와 시대의 늪에서 빠져나와 현실의 나와 마주한다. 각각의 시대와 삶의 잣대가 다 다른데 눈앞의 현상으로만 우열을 가린다는 것이,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것이, 뭘 차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한 철, 지고지순 해를 바라보며 강렬한 뙤약볕 아래 화려함을 뽐내며 벌과 나비를 불러들이다가 갈 때는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씨를 맺어가는 해바라기의 모습이 행복의 잣대로 각인되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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