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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특별기획전 ‘웅상’
오피니언

특별기획전 ‘웅상’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0/10/13 15:42 수정 2020.10.13 15:42

 
↑↑ 전대식
양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양산시민신문  
얼마 전 역사적 사건 속에서 우리 양산의 위치를 살펴보는 평생교육원 프로그램을 하나 맡았다. 지역 안배로 ‘웅상’ 항목을 넣었는데, 막상 교안을 준비하면서 당장 벽에 부딪혔다. 웅상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이다.

변명 같지만, 웅상에 대해서 자주 접할 기회가 없다 보니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시내’라고 부르는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혹은 기관)도 그렇지 않을까.

고심 끝에 준비한 내용은 ‘조선통신사의 길’이었다. 조선 후기 약 250여년 동안 한일 간 평화를 담보했던 통신사의 일본 사행은 한양에서 출발해 20여일 만에 용당(龍塘, 지금의 서창동 일부)을 거쳐 동래부로 들어갔다. 양산군수가 용당에서 접대를 맡았고, 황산역에서는 말과 통신사선(船) 노꾼을 제공했다. 지금 웅상에 남아있는 통신사의 흔적으로는 ‘통신사로(路)’라는 도로명과 ‘조선통신사의 길’ 기념 표지석 정도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조선통신사라는 굵직한 역사적 이슈 속에서는 웅상의 존재감이 너무 약하다. 웅상 자체로 울림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는 사이 코로나로 인해 다행인지 아닌지 강의는 연기됐고, 지난 8일 양산시립박물관에서 특별기획전 ‘웅상’이 개막됐다.

웅상은 행정구역상으로 구 웅상읍에 해당하는 서창동, 소주동, 평산동, 덕계동의 4개 동을 말한다. 인구는 9만4천626명(2020년 1월 기준)이다. 역사적으로는 원삼국시대 우시산국(于尸山國) 일부로 추정되며, 1896년에 울산군 ‘웅상면’으로 그 이름이 처음 나타나고, 1906년 양산군에 편입됐다. 1991년 읍으로 승격되고 2007년에 읍에서 위의 4개 동으로 분동돼 오늘에 이른다.

동쪽으로는 대운산, 서쪽으로는 천성산이 웅상지역을 아우르고 있으며, 회야강이 천성산 남단 무지개폭포에서 발원해 매곡천, 명동천, 소주천, 주남천과 용당천을 포용하며 웅촌지역을 지나 회야댐으로, 그리고 동해로 총 37.7km(웅상지역 10.6km)를 흘러나간다.

특별전 중 몇 가지만 살펴보자. 웅상의 고대유적은 발굴된 곳만 20여곳으로 청동기시대부터 고려시대의 다양한 유물ㆍ유적을 확인할 수 있다. 16세기 말에서 19세기까지 분청사기와 백자 그리고 그 과도기에 자기를 굽던 10여곳의 가마터도 발굴됐다.

서부양산에 가야진용신제가 있으면 동부 양산에는 웅상농청장원놀이가 있다. 통신사의 길목인 용당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했다. 전쟁 포화 속에서 지역 교육을 지킨 개운중학교 이야기도 있다.

전시품 중 자루 없는 칼 한 자루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며 종전 교섭에서 특출한 능력을 발휘했던 이겸수 장군의 보검이다. 소꿉 같은 조그만 항아리와 호리병과 잔들은 정응갑 장군의 묘에서 묘지석과 함께 출토된 명기(明器)라고 하는 것이다. 자세한 것은 직접 가서 보시고 ‘웅상’을 만끽하시기 바란다.

결론을 말하면 ‘웅상’은 없는 것이 아니라 뭔가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애써 알려고 하지 않았다. 웅상은 오래됐지만 새로운, 자체로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이번 특별전은 웅상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교안도 많이 보완했다. 양산의 문화관광해설사로서 이를 적극 학습하고 활용해 문화, 관광 쪽에서의 균형 발전에 조그만 도움이 되고 싶다.

이 글은 읽는 독자 여러분들은 즉시 시립박물관으로 달려가 특별기획전 ‘웅상’을 관람하시기를 강추한다. 코로나 상황이라 아쉽게도 공식 대면 해설은 중지됐지만, 개별 문의에는 우리 해설사들이 기꺼이 응대하고 있다.

개막 첫날 웅상발전협의회의 한 분이 무슨 말끝에 ‘웅상에서는 양산으로 수십 번을 가야 되지만, 양산에서는 웅상으로 한 번도 오지 않는다’라고 한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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