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이섭 문화교육연구소田 소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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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우리 학습모임이 지역 문화정책과 시스템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자발적 배움 활동을 통해 그 방향성을 모색하며 가치를 확산시키고자 했음은 하나의 혁신이라 할 수 있겠다. 이 혁신은 필연적으로 오해라든가 비판이 동반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거나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의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지금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는 큰 깨달음을 가지는 계기이기도 했다.
#2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연구소에서는 매월 넷째 주말을 아이들과 1박 2일을 하며 활동 중이다. 올해 큰 주제가 ‘나무(木)를 통한 세상(宇宙) 이해- 本(본), 枝(지), 休(휴), 樂(락), 集(집), 果(과)’이고, 지난 주말 활동 주제는 ‘集(집)- 행위 판단의 기준’이었다. 뭘 모으기에 ‘集(집)’이라 하고, 그 내용을 ‘행위 판단의 기준’이라 하며 아이들과 생각의 시간을 가졌던 것일까?
그 생각의 깊이야 알 수 없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과 좋고 나쁨에 대해 우리가 무엇을 더 바람직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그래도 나름 교육활동이라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기르는 어른 입장에서 세상을 먼저 살아보니 법의 잣대로서가 아니라 도덕의 잣대로 옳은 일이라고 행한 것도 결과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더라, 그러니 무언가 행위를 함에 있어 그 판단 기준 설정을 위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모음, 集)함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교육활동을 ‘도야(陶冶)’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이렇듯,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근본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색이 필요한데, 진정성 있는 사색은 거경궁리 속에서 나올 것이다. ‘거경궁리(居敬窮理, Pious Attitude&Extreme Consideration)’란 사람과 사물을 지극히 공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대하는 상태인 경(敬)에 거(居)하면서 궁리하는 것이다. 일찍이 정이(程頥, 1033~1107), 주희(朱熹, 1130~1200) 등 사상가들이 지식만 쌓는 것은 무의미하고 자기를 완성할 수 있는 수양을 중시한 것은 사물의 이치를 알고 존재 이유인 소이연(所以然)과 소당연(所當然)을 밝히기 위함이었다.
비로소 어떤 하나의 일을 매듭짓는 단계에 이르러 생각해 본다. 좋은 동기를 중시하는 것이 선한 행위일까?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선한 행위일까? 어떤 사람과 사물을 만족시키는 행위가 다른 어떤 사람과 사물에는 피해를 줄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말자. 다변화해가는 사회의 법과 원칙 속에서 과연 옳음은 무엇일까? 또 사람마다 제각각 품고 있는 원칙과 가치 기준이 다 다르기에 참으로 세상살이는 더더욱 어려워지는 것 같다. 그래서 본질을 더 되짚어보고 격(心, 思, 言, 行)을 달리하기 위해 거경궁리 속으로 침잠의 시간을 갖기로 한다.
본디, 나란 사람은 학문을 좋아하거나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고매한 척하기 위해 문자를 쓰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실 타파를 하기 위해 고심하며 살아가다 보니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생각하게 되고, 교육활동을 이어 오다 보니 하나의 습이 돼버린 경향일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내 나름의 평생학습을 실천해가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 문화교육연구소田 한가운데 있는 느티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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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한가운데 10년째 키우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잎사귀를 다 떨어뜨리고 찬바람 앞에서 다음 생을 위해 조용히 땅의 기운을 딛고, 하늘의 기운을 받치며 사색에 잠겨있다. 마치 내적 수양의 거경과 외적 탐구의 궁리처럼….
아이들과 교육활동 주제인 ‘나무(木)를 통한 세상(宇宙) 이해’는 나를 위한, 어른들을 위한 주제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