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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된 양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 석용화 옹 생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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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된 양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 석용화 옹 생존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1/11 14:27 수정 2021.01.11 14:27
석 옹 조카 “통일부로부터 가끔 소식 들어”

ⓒ 양산시민신문

양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로, 2000년 북송됐던 석용화(95) 옹이 아직 생존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꿈속에서도 남편을 그리던 부인은 와병으로 요양병원에 가고, 두 딸도 미국에 이민 가는 등 한때 단란했던 가정은 이념 앞에 비운의 가족사만 남겼다.

석 옹의 조카 석아무개(58) 씨는 “북한에 계신 큰아버지가 아직 생존해 계신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연로하셔서 늘 근황이 궁금한데 가끔 통일부를 통해 소식을 듣고 있다”고 밝혔다.

석 옹 공식 근황은 북송 후 공화국 영웅 칭호와 함께 조국통일상, 김일성 시계 표창을 받았고, 2015년 4월 북한 조선중앙통신에서 김정은으로부터 구순 생일상을 받았다는 뉴스가 나온 것이 전부다.

석 옹은 1925년 4월 하북면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비교적 유복했지만, 일제강점기에 몰락하면서 어렵게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방 이후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에 실망해 좌익운동에 뛰어든 ‘자생적 사회주의자’가 됐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인민유격대로 참전했고, 울산 신불산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1952년 6월 체포됐다.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장면 정부가 들어선 뒤 20년형으로 감형됐고, 만기 복역 후 1972년 출소했다.

그가 소련 모스크바대학에서 유학했고, 부친이 아들의 좌익사상 때문에 가문이 풍비박산할 것으로 염려해 호적을 파버렸다는 사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 출소 후 주변 권유로 1973년 결혼해 딸 둘을 두고 가정을 꾸린 뒤 이사를 10번이나 해야 할 만큼 어렵게 생활했지만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그러나 오랜 수감생활에도 전향을 거부하는 등 북한을 유일한 조국으로 숭배하는 좌익사상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던 석 옹은 2000년 9월 2일 6.15남북공동선언에 따라 63명의 비전향 장기수 일원으로 북한으로 송환됐다. 석 옹은 삼팔선 북쪽을 밟아 본 적이 없는 남쪽 출신인 데다 가족이 모두 대한민국에 거주하면서 송환을 반대했다는 점에서 송환 대상자 가운데 드문 사례였다.

석 옹은 북송 전 조카와 함께 통도사 월하 스님을 만나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한다. 월하 스님과 친구 사이였던 것. 월하 스님은 마지막 인사를 하며 여비에 보태라며 봉투를 전하기도 했다고. 판문점에서 눈물의 생이별을 했던 석 옹 가족은 지난 20년간 뿔뿔이 흩어졌다. 47세와 43세인 두 딸은 미국에 이민 갔고, 부인 이아무개(83) 씨는 요양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석 옹 소식을 전한 조카 석 씨는 “피붙이들 만류를 뿌리치고 그렇게도 갈망하던 북한으로 간 큰아버지를 만나면 ‘당신의 조국 20년이 어떻던가요’라고 꼭 물어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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