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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시민신문 |
“좀 덜 치사하고, 덜 비겁하고, 정말 남 기죽이거나 남 깔아뭉개는 짓 안 하고, 남 해코지 안 하고…. 그것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살만하지”<저서 풍운아 채현국 中>
풍운아, 시대의 어른, 건달 할배, 자유인…. 돈과 명예,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직접 만들어온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을 우리는 이렇게 불렀다. 그가 지난 2일 향년 8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채 이사장은 1935년 대구광역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중앙방송(현 KBS)에 연출가(PD)로 입사했으나, 박정희 전 대통령 찬양이 싫어 입사한 지 1년 만에 퇴사했다.
이후 아버지 채기엽 선생의 탄광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버지와 함께한 탄광사업으로 개인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2위에 오를 정도로 거부가 됐고, 탄광을 비롯해 조선소, 농장, 해운회사, 화학공장까지 사업을 확장하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강원도 흥국재단(탄광ㆍ화학ㆍ금광ㆍ목축ㆍ해운ㆍ무역 등)을 운영하다 정치권력의 유혹을 피해 회사를 정리, 근로자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전두환 때는 민주운동가인 장기표 선생을 숨겨주는 등 독재정권 아래서 민주인사를 남몰래 도왔다.
이처럼 24개 기업을 운영하다 1980년 모든 자리를 내려놓은 뒤 1988년 학생들이 흥미와 적성을 찾아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뭐든 하고 싶게 만든다는 교육철학으로 효암학원을 설립, 이사장으로 취임해 별세하는 그날까지 재직했다. 효암학원은 효암고와 개운중을 두고 있다.
무엇보다 양산교육계의 큰 어른으로, 그 누구보다 양산지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교육자로 활동해 왔다. 특히, 지역 교육 현안에 대한 거침없는 입담으로 나무라는 모습은 많은 이의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최근까지도 강연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시대의 스승’으로서 숱한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