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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 新 자산어보를 ..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5] 新 자산어보를 읽고 보다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5/07 10:43 수정 2021.05.07 10:43
조기 평전/ 주강현

 
↑↑ 이기철
시인
ⓒ 양산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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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거사(地空居士),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다니는 나이가 됐다는 해양 문명사 연구가 주강현 선생의 책, ‘조기 평전’. 이번에는 음식이 아니라 특정 물고기가 살아온 일생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이다. 학술 서적이라지만, 마치 아주 재미있는 소설 한 편 읽은 느낌이다. 각종 자료와 방대하게 늘어놓은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제사상에 올려져 ‘절받는 고기’ 대접받는 석수어(石首魚)라고 기록된 조기.

소말리아 속담에는 노인 한 사람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에서는 어민 한 사람이 죽으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고 쓰여있다. 기록이라는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이지만 인물 평전도 아닌, 하찮을 수 있는 물고기 이야기에 이토록 관심이 기울인 이유가 궁금하다.

지공거사(地空居士)가 ‘황해 문명권의 독특한 어업 문화를 창출하는 어느 물고기 이야기’라고 밝힌 데는 다 이유가 있어서다. 그는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玆山魚譜)나 김려가 진해 앞바다의 기이한 수생식물을 기록한 우리나라 최초 어보인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 현 전북 고창지역 어족에 관한 조사 기록인 서유구가 쓴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내보인 셈이다. 자기를 둘러싼 바다에 갇히지 않고 오히려 그 바다를 사랑한 마음으로 지은 책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정약전이 남긴 바닷속 ‘사물’에 대해서 말이다.

당시 조기는 일본인도 주목한 물고기였다. 조선사람들이 관혼상제에 빼놓지 않고 올리는 ‘절받는 고기’에 대해 재빠르게 그들은 돈벌이에 나서기도 했다. 현재는 아프리카 기니산(産) 조기가 글로벌하게 유통되며 몸값을 한다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추자도 해역에서도 일부 잡히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역사 문화 총량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사실이다. 조기를 음식으로서가 아니라 문화와 역사로 다시 한번 살펴보자는 의도가 여기에 있다.

↑↑ 조기 평전 표지
ⓒ 양산시민신문

물고기가 어떻게 한 나라 문화와 문명에 영향을 미쳤을까?

조기는 밥상머리에서 아직은 퇴장하지 않았다. 명태와 더불어 국민 생선으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아스라이 사라진 조기를 중심으로 벌였던 바다 축제 파시와 임경업 신화, 풍어굿, 배치기 등 서해 어민들 생활에 도움을 준 어업 풍습은 없어졌거나 막 내린 지 오래이지만, 흔적은 역사로 거두고 챙겨야 할 유산이다.

조기라는 물고기를 두고 장광설을 풀어놓은 책이 얼마나 대단하겠냐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고 대놓고 빈정거릴 일이 아니라 거대 담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필자 서재 책장 하나는 온전히 평전과 자서전으로 채워져 있다. 만해 한용운 평전을 비롯, 윤동주, 간송 전형필, 전태일, 백석, 만델라뿐만 아니라 모차르트까지 백여 권에 달하는 책이 있다. 여기에 당당히 사람이 아닌 조기 평전 한 권을 더해 둠으로써 사람 노릇 못한 반성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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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평전도 시작은 똑같다. 자산어보(玆山漁譜)의 출발은 흑산도 주민이었던 장덕순, 즉 집안이 가난해 배움을 뻗치지 못한 창대(昌大)라는 사람이 먼저 진술한다. 이에 약용이 조언하고 다산 제자 이청이 문헌을 고증해 완성됐다. 원래는 채색까지 입혀 그림도 그려 넣을 예정이었으나 아우가 극구 말렸다. 이름도 해족도설(海族圖說)로 하려 했으나 기이한 책이 된다며 글로 쓰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다산과 약전 형제간 생각 차이 혹은 학문 방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 영화의 한 장면-창대와 밥상을 두고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 양산시민신문

또, 흑산어보가 아니라 자산어보가 된 까닭에서 유배자(流配者)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흑산(黑山)을 자산(玆山)이라 한 이유는 유배길이 어둡고 무서워 피하고 싶었음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흑(黑)이나 자(玆)는 모두 검다는 뜻이다. 약전은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흑(黑)은 너무 캄캄하니 그나마 나은 흐리고 어두운 자(玆)를 택했다. 희미하지만 그 속에 빛이 있음을 믿고 싶은 탓이었다. 약전이 유배길을 덤덤 혹은 담담으로 받아들였는지 모르는 일이지만, 마음은 분명 ‘컴컴’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동생 약종까지 죽임을 당했으니 말이다.

영화 자산어보에서도 수많은 물고기 이름이 등장한다. 민어, 문어, 전복, 가오리, 홍어, 돛돔, 청어를 비롯 조기도 슬쩍 지나간다. 영화는 조기 평전이 아니므로. 앞서 조기를 둘러싼 역사 문화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살펴봤다.

↑↑ 영화의 한 장면-과부댁과 약전이 집 앞을 지나가는 창대를 부른다
ⓒ 양산시민신문

영화는 약전과 창대 두 사람에 주목한다. 여기에 쓸모없는 성리학, 박해받는 서학, 탐관오리들 행패, 권력이 가진 추함, 과도한 세금으로 인한 백성들 고난 등이 바다라는 무대 위에서 섞인다. 바다가 던지는 질문과 답이 영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지점이다. 바다에 그물만 던지는 게 능사는 아니다.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안다’는 대사처럼 조기 평전이나 자산어보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책이다.

이제 서해를 대충 둘러봤으니 동해 차례다. 울산대학교 허영란 교수가 연구 책임자로 짐을 지고 김구한 교수 등 스무명 연구가들이 품을 팔아 최근 발간한 ‘동해 포구사’를 살펴볼 시간이다. ‘해 뜨는 동해에서 해 지는 서해까지’ 닿아야 新 자산어보는 완성된다. 남해는 자연스러운 동행이다.

↑↑ 영화의 한 장면-전설의 물고기라 불리는 돗돔을 잡아 온 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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