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양산시민신문

현수막 정치는 이제 그만!..
오피니언

현수막 정치는 이제 그만!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5/20 15:07 수정 2021.05.20 03:07
재활용도 잘 안 되는 현수막보다 시민과 소통이 우선

↑↑ 허문화
우리동네작은도서관장
전 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
ⓒ 양산시민신문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국민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집 베란다나 사람이 많이 보는 외벽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현수막을 걸었다. 2015년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무상급식 중단 선언으로 경남 18개 시ㆍ군 지자체가 무상급식 예산을 모두 삭감해 무상급식이 중단되자 경남의 많은 학부모가 무상급식을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무상급식 의무급식”이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1년이 넘게 아파트 베란다나 길거리에 걸었다. 이처럼 현수막은 오랜 시간 답답한 시민의 절박함을 대변해주는 걸개 신문고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런데 최근 양산의 일부 정치인들이 현수막을 걸어 일명 ‘현수막 정치’를 하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을 만나기가 힘들어서 현수막으로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는 이해가 된다. 하지만 국가에서 결정한 사안마저도 자신의 사진을 넣어 홍보하는 것은 마치 그것이 자신의 치적인 양 착시를 일으키게 해 시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심지어는 야당 국회의원 현수막 아래 여당 지역위원장이 내건, 똑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같은 동네에, 마치 현수막으로 정쟁을 하듯 걸려 있어 참으로 씁쓸하기 짝이 없었다. 시민을 위한 실천적ㆍ현실적 정치는 없고, 생색내기, 자기 알리기 현수막만 바람에 나부끼는 진풍경을 봐야 했다.

양산의 몇몇 정치인이 내건 현수막을 보면 지금이 마치 선거기간인 줄 착각을 할 때가 있다. 필자는 양산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양산의 정치 지형을 봐 왔지만, 이렇게 무모하고 공허한 현수막을 요즘처럼 많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현수막(엄밀히 따지면 다르지만, 이 글에서는 플래카드로 통칭함)의 유래를 찾아보니 1517년 독일의 마르틴 루터가 교회 면죄부에 대한 부당성, 교회의 갖가지 부패를 강하게 비난하는 ‘95개조의 반박문’을 만들어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회 정문에 붙이면서 시작됐다. 이로 인해 루터는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지만, 이것이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됐다. 당시 플래카드라는 용어는 없었으나 루터가 교회 정문에 붙인 반박문을 플래카드의 효시로 본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 전역에는 반박문이나 호소문 같은 글을 적은 걸개가 서서히 퍼져나갔으며 1534년 10월 프랑스에서는 교황청과 교회와 사제들의 부정부패와 타락을 비난하며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호소문이 파리 시내는 물론 왕궁에까지 붙었다. 이 사건을 ‘플래카드 사건’이라 부르면서 처음으로 ‘플래카드’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처럼 현수막을 거는 행위는 정의로운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절박함이나 다급함에서 시작된 행동인데 우리 양산에는 최근 일부 정치인들이 자기 알리기용으로 현수막 공해를 만들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물론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라 정책이나 정당 활동을 자유롭게 현수막을 통해 홍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당법> 제37조를 보면 “정당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활동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정당인이 아니라 정당의 자유에 대해 명시하고 있다. 그래서 엄밀하게 따져보면 옥외광고물법에서 예외로 허용한 정당 관련 현수막을 내걸더라도 정당명을 명시해 축하하거나 알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지역 정당의 대표임을 내세워, 그것도 선거에 나올 사람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현수막에 부착해 홍보하는 것은 사전 선거운동과 다를 바가 없다고 여겨지는데, 이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정치를 할 거면 제대로 된 정책으로 시민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누군가가 해 놓은 다 된 밥에 숟가락 올리는 그런 현수막 정치는 시민에게 피로감을 주고 소각 폐기해야 할 폴리에스테르 쓰레기만 남긴다.

일반 시민이 달 수 없는 현수막을 정당에서는 얼마든지 내걸 수가 있다. 시민의 팍팍한 삶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현수막 하나만 봐도 마음이 따뜻해져 오는 정책이나 정치 활동에 대한 문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도 비싼 돈을 들여 현수막을 달면서 이미 뉴스에서도 다 알린 일들을 중언부언하며 홍보하는 정치인들 모습은 마치 관객 없는 모노드라마 속의 초조한 배우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인도의 성인 간디는 “세상의 변화를 보고 싶으면 스스로 그 변화가 돼라”고 말했다. 세상을, 대한민국, 작게는 양산의 정치 지형의 변화를 보고 싶다면 양산의 정치인들이, 한밤중에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자기 얼굴 넣은 현수막을 달아서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를 만들 것이 아니라, 제발 귀를 열어 시민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변화 그 자체가 돼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양산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