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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가난하게 마옵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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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가난하게 마옵시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6/01 13:17 수정 2021.06.01 01:17

 
↑↑ 박동진
소토교회 목사
ⓒ 양산시민신문  
몇 해 전 나의 절친이 부친상을 당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문상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가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부조금을 마련할 수 없었다. 부조금 없이 그냥 가서 얼굴만이라도 비추고 와야 할지 아니면 외면해야 할지 고민됐다. 물론, 그 친구는 내가 빈손으로 간다 해도 그저 와준 것으로 고마워할 친구였지만, 내 자존심은 또 그런 게 아니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빈손으로 문상을 하긴 했는데 정말 서글펐다.

당시 재정적으로 참 어려울 때였다. 애가 넷이다 보니 매년 수험생 부모였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아이, 또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 뒷바라지하느라 통장에 잔고가 있을 틈이 없었다. 통장은 항상 비어 있었고, 카드는 한도 초과한 지 오래였다. 매달 사례비가 나오면 카드빚으로 다 사라졌고, 그때 다 갚지 못한 것은 리볼빙이 돼 몇 달씩 적체되다 보면 어느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다. 그러면 고금리로 카드 대출을 받아서 일단 급한 불을 끄고, 목회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알바들을 닥치고 했다. 매달 서너개 알바를 했었고, 그렇게 모인 돈은 내 손에 쥘 틈도 없이 다 빠져나갔다. 그런 세월을 꽤 오랫동안 했다.

이때 가장 힘든 것이 바로 이런 경조사였다. 가긴 가야겠는데 빈손으로 가려니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그런 일은 어떻게 둘러댈 수는 있다. 나중에 전화해서 그때 사정이 생겨 못 가서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면 어느 정도 해결될 문제다. 하지만 가정의 경조사는 그렇지 않다. 장남이다 보니 우리 가정의 대소사는 다 내 손을 거쳐야 하는데, 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떻게 하자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고맙게도 장남의 처지를 이해하는 동생들이 지혜롭게 잘 대처해줘서 크게 자존심 상하지 않고 이런저런 일을 다 해낼 수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 큰 애들은 졸업해서 직장생활하고, 셋째와 막내는 대학에 다니지만 알바를 하든지 해서 자기 앞가림을 하는 터라, 이전처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지출은 많지 않다. 벌이는 그대로지만 지출이 주니 재정적으로 조금 여유가 생겨 요즘은 이전과 같은 고민을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경험 속에서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 있다. 요즘 세상에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친구 간 우정을 지키는 데도 비용이 들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데도 그리고 형제간 우애를 지키는 데도 비용이 든다. 돈이 없으면 결례를 해야 하고, 때로는 해야 할 일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좀 고상한 말로 품위를 지키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의 인물 중에 아굴이라는 사람이 있다. 솔로몬과 함께 구약성경 잠언을 집필할 정도로 지혜로운 사람이다. 이분이 이런 기도를 한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했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이 기도문 중에 ‘가난하게도 마옵시고’라는 대목에 유독 눈이 간다. 왜 이런 기도를 할까? 그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혹 내가 가난해 도둑질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아굴이라는 사람도 살면서 가난이 주는 어려움을 처절하게 겪어봤기에 이런 기도를 한 것이 아니겠는가? 현실에서 체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기도이기에 더 마음에 와닿고 나도 그렇게 기도하게 되는 것이리라.

최저임금제라는 것이 있다. 사람을 고용해 일을 시킬 때 그 하한선을 정한 것이다. 올해 2021년 최저임금은 시급 8천720원이다.(문재인 대통령은 그의 임기 중에 최저시급을 1만원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돼 아쉬움이 크다) 최저임금을 정할 때 여러 가지 많은 경제적 요인을 고려해서 정한다. 이 요인 중에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는 품위유지비는 어느 정도 고려하고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저 입에 풀칠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최저임금을 정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 인간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다.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가난해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는 지킬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가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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