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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빛과 소금] 부(富)하게도 마옵시고..
오피니언

[빛과 소금] 부(富)하게도 마옵시고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7/20 13:46 수정 2021.07.20 13:46

박동진
소토교회 목사
201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 교수가 2010년에 프린스턴대 동료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함께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재밌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들은 2008~2009년 미국 전역 45만명을 대상으로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득이 높아질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계속 높아지지만, 행복감은 연봉 7만5천달러에서 멈춘다’는 것이다.

돈과 행복의 관계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74년 리처드 이스털린 남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내놓은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이다. 그는 30개국을 대상으로 개인의 행복도를 측정했다. 분명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가 그렇지 못한 나라에 비해 개인의 행복도가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연구 결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1960년 서독의 1인당 GNP는 나이지리아의 20배였는데 개인이 느끼는 행복도는 오히려 더 낮게 나왔다. 물질적으로 풍요하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도 “빈곤에서 벗어나 의식주가 해결되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게 되면 추가 소득이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즉, 무조건 수입이 많다고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지난 글에 구약성경 잠언에 있는 아굴의 기도를 인용해 ‘가난하게도 마옵시고’라는 글을 썼다. 현대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사람 구실 제대로 하지 못하며, 돈은 사람의 품격과 직결되기에 그 품격을 위한 기본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사회여야 한다는 취지의 글이다. 아굴의 기도가 무엇인가? 솔로몬과 함께 이스라엘의 지혜자로 손꼽히는 아굴은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한다.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잠30:8)

가난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야 누구나 바라는 것인데 그는 왜 ‘부하게도 마옵시고’라고 기도할까? 청빈하게 사는 것이 신앙인의 바른 도리라서 그런 것일까? 그렇진 않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소위 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 부자가 많았고, 그들이 부자가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칭찬하지, 부자라고 욕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가난하다고 더 신앙인답고 부자이기에 탐욕스러운 사람이라고 무작정 매도하지 않는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하나님께 혼날 짓 하지 않고, 바르게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기왕이면 부자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될 터인데 그는 ‘부하게도 마옵시고’라고 기도한다. 그가 이렇게 기도하는 이유는 그다음 절에 나온다.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잠30:9) 돈이 많아서 세상살이에 걱정이 없다 보니 하나님에 대한 아쉬움이 없고, 또 돈이 많다 보면 교만해져서 세상이 마치 자기 것인 양 착각해서 돈이면 다 되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한 것이다.

꽤 오래전 뉴욕타임스에서 돈푼 꽤나 있는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해보니 부자들이 안고 있는 몇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다. 돈이 많은 부자들은 의욕이 약해지며, 쉽게 매사에 지루함을 느끼고, 땀을 덜 흘리고 번 돈일수록 죄책감과 열등감에 빠지게 되며, 점점 감정이 메말라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많을수록 자녀들이 부모가 아니라 가정부에게서 더 따듯한 모성애를 느낀다고 한다. 돈이 많다고 마냥 좋은 것이 아니라 돈이 많을수록 인생에 미치는 부작용도 크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현상이다.

‘곡성’이라는 영화가 있다. 수많은 명대사를 낳은 작품인데 특히 세 가지 대사가 마음에 남는다. 하나는 “그놈은 그냥 미끼를 던져분 것이고, 자네 딸내미는 고것을 확 물어분 것이여” 또 하나는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마지막으로 “절대 현혹되지 마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곡성의 이 대사가 아굴의 기도와 겹쳐진다.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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