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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11] 지구 최후는 ..
오피니언

[이기철 시인과 책 숲 산책(散冊)-11] 지구 최후는 다들 무서워하면서…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8/06 10:24 수정 2021.08.06 10:32
인류세: 인간의 시대/ 최평순 외

이기철
시인
2021년 7월 29일 저녁, 울산지역 프라임 뉴스. ‘부ㆍ울ㆍ경 메가시티 합동추진단 출범식’ 뉴스가 톱으로 보도됐다. 2040년까지 교통망 확충, 연합대학교 설립 등 인구 1천만명 거대도시 탄생을 공식 발표했다.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참석해 아낌없는 정부 지원을 약속하는 한편 지방 소멸 위기를 타파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최초라며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2019년 8월 26일. 인도네시아는 수도 자카르타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로 공식 발표했다. ‘완전한 승리’라는 별명을 가진 작은 항구, 특산물 야자 열매가 거래되던 곳. 어느 날 네덜란드인 눈에 띄어 16세기 말 동인도회사가 건설됐다. 당연히 운하와 시가지도 조성됐다. 사람이 모여들었고 무역은 번성했다. 1930년대 인구는 50만명. 1970년대에 와서는 45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제 자카르타는 인구 1천100만명이 넘는 메가시티다. 당시 도시 설계상 적정 인구수는 80만명이었다.

자카르타는 수도관이 공급되지 않아 대부분 암반수를 길어 올려 사용한다. 2050년 북부 자카르타지역 95%는 해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과도한 지하수 개발, 고층 건물 건설이 범인이었다. 그 범죄를 저지른 이는 바로 인간이다.

‘거대한 가속’은 도시 기능을 마비시켰다. 이제 그들은 ‘완전한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새 수도로 발표된 칼리만탄주 땅값은 이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메가시티가 내린 재앙이다.

지난해 기준 세계 35개 도시가 거대도시로 발표됐다. 도쿄가 1위, 서울은 8위다. 19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세계 인구 3%만이 도시에서 살았다. 2050년이 되면 70%가 살게 된다는 전망이다. 현재는 전 세계 인구 절반 가까운 숫자인 40억명이 도시로 몰려와 살고 있다. 대한민국도 이미 인구 80%가 도시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부ㆍ울ㆍ경 메가시티 합동추진단 출범식 장면

메가시티란 위성도시를 포함, 인구 1천만명이 넘는 거대도시를 말한다. 1950년경 뉴욕이 이 조건을 충족한 첫 도시가 됐다. 두 도시 이야기를 글 앞에 둔 이유가 있다. 과연 대도시에서 살아간다는 일은 축복인지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아직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인류세’를 말해야만 한다. 공룡이 누비던 쥐라기 시대 등 지질시대는 알고 있다. 그러면 인류세는 과연 무슨 뜻일까? 쉽게 말하자면 인간이 암석을 이동시켜 인위적으로 퇴적층을 만드는 시대다.

네덜란드 대기과학자 파울 크뤼친이 프레온 가스 등으로 오존층이 파괴된 작금 지구를 인류세로 개념을 정리해 한 회의에서 제안했다. 이 용어는 1980년대 후반 미국 생물학자가 이미 사용했으나, 이 단어가 가진 확장성이나 의미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를 이어받은 대기과학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인류세에 대한 논의와 경고를 해오고 있다.

‘인류세: 인간의 시대’ 책 표지

과학자들은 인류세 회의를 통해 모은 연구 결과를 24개 지표로 설정했다. 세계 인구, 도시 인구, 에너지 사용, 비료, 종이 소비 등을 사회 경제적 지표로, 열대 우림 손실, 해양 산성화, 성층권 오존 등을 지구 시스템 지표로 삼아 결과를 발표했다. 충격이었다. 산업혁명 후 1950년대 직전까지 완만하던 연구 그래프는 1950년대를 지나기 무섭게 가파르게 상승했다. 바로 ‘거대한 가속’(The Great Acceleration).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빈곤에서 탈출했고 삶은 윤택해졌다. 인류 복지 증진에 이바지했다. 이때까지다. 이후 ’부의 저주‘가 시작됐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소비 증가를 앞세우며 인류세 엔진 역할을 했다.

현대 문명을 한마디로 정의하라면 탄소를 태우며 이룩한 결과물이다. 이미 지구는 다섯 차례 대 멸망을 겪었다. 운석 충돌, 화산 폭발, 빙하기 도래 등. 이제는 인류 자체가 멸망 위기에 놓인 셈이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프로그램 방송 화면 캡처

이렇게 말해도 아직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현재 지구상에는 70억 인구가 살고 있다. 한편 닭은 230억 마리가 공존하고 있다. 사람 한 명당 닭 세 마리다. 고생대 대표 화석은 삼엽충이었다. 중생대는 암모나이트, 미래는 분명히 닭 뼈 화석이 유력하다.

2008년을 기억하는가? 조류 독감이 휩쓸고 지나간 뒤 약 1천만마리 닭들이 살처분돼 매립됐다. 그런 뼈들은 썩기도 하지만 화석이 되기도 한다. 이미 인도에서는 2,500년경 가축화된 닭 뼈가 발견된 바 있다.

영국 한 대학에서 ‘치킨 프로젝트’를 가동, 연구하고 있다. 지질학, 고고학, 인류학, 역사학, 생물학, 문화지리학, 생태학, 철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모였다. 2018년 12월 이들은 논문을 발표했다. 내용은 ‘식용 닭은 생물권을 바꿔 놓은 상징으로서 지표 화석이 될 만하다’. 우리가 즐겨 먹는 프라이드치킨 뼈가 이 시대를 대표하는 화석이 된다는 사실. 이런 지경을 풍자한 예술가들도 등장했다. 이른바 ‘핑크 치킨 프로젝트’. 분홍색 뼈가 쌓이면 분홍색 지층이 생긴다. 소나 돼지가 아니라 개체 수가 압도적인 닭. 핑크 색깔이 우리에게 경고장을 날린 셈이다.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프로그램 방송 화면 캡처

글을 정리해 보자. 46억년 지구 역사는 익숙한 시간 개념을 종종 혼돈에 빠트리게 한다. 한 세(世)에서 한 세(世)로 이동하는 데 수백 혹은 수천만 년이 걸린다. 기(紀)나 대(代)보다는 짧다.

공식적으로 현재 지질시대는 ‘신생대 제4기 홀로세’다. 홀로세는 약 1만1천700년 전에 시작됐다. 그런데 인류에 의해 지구가 짧은 시간 동안 빠르게 변했다. 홀로세와 구분되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낳은 이름이 ‘인류세’다.

‘총, 균, 쇠’ 작가인 문화인류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에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인간은 힘입니다. 역사상 존재했던 종(種)중 가장 힘이 있는 종이에요. 힘이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힘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힘은 도덕적으로는 중립입니다. 힘은 좋은 목적으로도 사용되고 나쁜 목적으로도 사용됩니다. 인간의 힘은 제 아이들과 손주들에게 행복한 삶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아이들과 손주들의 세상을 무너뜨릴 수도 있어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그것이 인간의 힘이죠”

 

EBS 다큐프라임 ’인류세‘ 프로그램 방송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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