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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슬기로운 명상생활] 명상과 메타인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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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명상생활] 명상과 메타인지(2)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8/17 11:14 수정 2021.08.17 11:14

박대성 원불교대학원대학교 교수(원불교 교무, 명상ㆍ상담전문가)

 

우리는 명상을 통해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나’ 자신이 아니라 ‘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다. 나의 것이라면 내 마음대로 처리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내 몸이라는 한계를 넘어 마음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다.

명상은 오래 앉기나 참는 연습이 아니다.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속지 말고 ‘나’와 그 현상을 분리해 객관화하는 것이 명상의 요체다. 마치 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내가 관객이 돼 거리를 두고 바라보듯이 말이다.

이를 위해서 선행해야 하는 것이 언어습관을 바꾸는 것이다. 사람은 생각(意)한 대로 말(口)하고 행동(身)한다. 그 행동을 기반으로 현실 세계에 인(因)을 심고 그 인이 특정한 상황을 만나면(緣) 결과(果)로 나타나게 된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평상시 행동을 변화시켜야 하고 또한 생각과 말을 변화시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생각은 컨트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갖가지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을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메타인지가 부족한 사람은 객관적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고 생각에 속아 주관적인 현상을 진실로 착각하게 된다. 주관적인 경험과 현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까만 선글라스를 쓰면 세상이 까맣게 보인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세상이 다양한 형형색색으로 구별된 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명상을 통해 이 필터를 변화시킴으로써 철석같이 굳은 생각이 변화되고 따라서 말과 행동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이 정도가 되면 내가 받게 되는 현실 세계의 결과(인과응보)가 달라진다. 고정된 생각의 필터를 알아차리는 훈련과 이것을 변화시키는 훈련이 곧 명상이다. 우울과 불안 등과 같은 기본적인 부정적 감정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명상적인 관점에서 표현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평상시 ‘우울하다’, ‘불안하다’, ‘짜증 난다’, ‘화난다’ 등과 같은 형용사를 사용하기보다 상태의 선택을 강조하기 위해 ‘우울해하기’, ‘불안해하기’, ‘짜증 내다’, ‘화내다’라고 동사를 사용해서 감정을 나타내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명상은 수행자로 하여금 ‘나의 조물주는 곧 나’라는 확신을 심어준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으며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바로 선 공부의 기초가 된다. 명상가들은 그래서 의도적으로 자신이 자발적인 주체로 나타나는 능동태 또는 진행형 동사를 많이 사용한다.

명상을 통해 감정을 명료하게 정리하지 못한 형용사의 표현 대신 능동적이고 주제적인 동사형 문장으로 표현을 바꾸는 연습은 행동과 사고뿐 아니라 감정까지도 스스로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는 책임 의식을 심어주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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