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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민신문

[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5] 대성암에서 만난 문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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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의 양산 이야기 5] 대성암에서 만난 문화재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8/27 09:43 수정 2021.08.27 09:43

송철호
고전문학 박사
1.
대성암은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에 있는 사찰이다. 대성암은 승려 원진이 근래에 창건한 사찰이다. 천성산 북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인 안적암, 조계암 등과 인접해 있다. 대성암 가는 길은 영산대학교 뒤 주남고개에서 가는 길이 제일 많이 이용된다. 이 외에 내원사 매표소에서 상리천 따라 걸으면 노전암이 나오는데, 노전암을 지나서 계곡 따라 산길을 계속 오르면 대성암을 만날 수 있다. 양산이 아닌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운흥사지 뒤로 오르면 대성암에 갈 수는 있지만, 완연한 등산길이어서 권유할 만하지는 않다.

대성암은 주지인 원진 스님이 수집해 소장한 전적들이 유명하다. 현재 보물 1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9점이 있다. 『감지금은니대방광불화엄경(紺紙金銀泥大方廣佛華嚴經)』(경상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390호),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보물 제1713호),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2호), 『춘추좌씨전구해(春秋左氏傳句解)』(경상남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393호), 『입학도설(入學圖說)』(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4호), 『춘추호씨전(春秋胡氏傳)』(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5호), 『집주두공부초당시(集註杜工部草堂詩)』(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6호), 『동인시화(東人詩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7호), 『두공부시범덕기비선(杜工部詩范德機批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8호)이 그것이다. 대표적이 몇 권의 서지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2.
『감지금은니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흔히 『화엄경』이라 불린다. 『감지금은니대방광불화엄경』란 말은 감지(紺紙)에 금색, 은색으로 베껴 쓴 경전이라는 뜻이다. 감지란 검은빛을 띤 푸른빛의 종이를 말한다. 양산 대성암 소장 『감지금은니대방광불화엄경』은 『대방광불화엄경』 진본(晋本) 60권 중 49권의 「입법계품(入法界品)」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권말에 “천력이년기사오월일사주지대사향여보질서(天曆二年己巳五月日寺住持大師向如補秩書)”라는 금자명이 있어 천력 2년, 즉 1329년(충숙왕 16)에 향여대사(向如大師)가 보서(補書)했음을 알 수 있다. 향여대사는 고려 후기 유학자인 이제현의 형으로 법명인 체원(體元)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14세기 전반기에 해인사 주지를 역임했고, 화엄사상계에서 비중이 높은 인물이다. 양산 대성암 소장 『감지금은니대방광불화엄경』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사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승기신론소』는 조선 전기 활자본이다. 이 책은 인도의 승려 마명이 저술한 논서(論書)로서, 이에 대한 주석서가 『대승기신론소』이다. 대표적인 주석서로는 신라의 원효, 중국 수(隋)나라의 혜원, 당(唐)나라의 법장의 저술이 있다. 양산 대성암 소장 『대승기신론소』는 법장이 주석하고 여기에 종밀이 주를 더한 것이다. 양산 대성암 소장 『대승기신론소』는 닥종이에 금속 활자 갑인자를 이용해 1457년(세조 3)에 간행됐다. 반곽의 크기는 36×22㎝로, 3권 1책으로 돼 있다. 1권은 없어진 상태다. 2003년 9월 18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97호로 지정됐다가 문화재청으로부터 2011년 4월 29일자로 보물 제1713호로 승격ㆍ재지정됐다. 국내 유일의 원간본이라는 점에서 불교학과 조선 초기 고활자본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지장보살본원경』은 조선 전기의 목판본이다. 『지장보살본원경』은 지장 신앙의 기본 경전이다. 지장보살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려고 노력해, 죄를 짓고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까지도 평등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지장보살본원경』에는 지옥의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오고 부모나 조상들을 지옥으로부터 천도해 극락 왕생하도록 하는 공덕이 열거돼 있다. 형태는 닥종이(楮紙)에 목판본(木版本) 선장(線裝)으로 상, 중, 하 3권 1책이다. 김수온(金守溫)이 쓴 발문에 의하면, 양산 대성암 소장 『지장보살본원경』은 1474년(성종 5) 성종의 비였던 공혜왕후가 사망하자, 세조의 비인 정희대왕대비가 주도해 명복을 빌기 위해 간행한 것이다. 『지장보살본원경』과 동일한 판본이지만 양산 대성암 소장 『지장보살본원경』에는 판본에 없는 「변상도(變相圖)」가 있다.

『춘추좌씨전구해』는 조선 전기 목판본이다. 『춘추좌씨전구해』는 『춘추좌씨전』을 중국 진(晋)나라 두예(杜預)가 구절별로 해설한 주석서다. 양산 대성암 소장 『춘추좌씨전구해』는 총 70권 가운데 제61권부터 제70권까지 10권이 1책으로 묶여 남아 있다. 발문(跋文)에 의하면, “신해년(1431)에 감사 조치(曺致), 도사 안질(安質)이 선본(善本)을 두루 구하여 나에게 그 일을 부탁하였는데 그해 중추(仲秋)에서 시작하여 중동(中冬)에 이르러 조성(造成)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발문 뒤에는 ‘선덕육년십일월청도개판(宣德六年十一月淸道開板)’이란 간기(刊記)가 있어 1431년(세종 13) 11월에 청도에서 출간했음을 알 수 있다. 비록 낙질(落帙)이기는 하나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출간된 고려본(高麗本)으로 발문간기(跋文刊記), 간행제원(刊行諸員)의 성명이 열기(列記)되어 있어 서지학 연구는 물론 경서(經書), 특히 『춘추좌씨전』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다.

양산 대성암 소장 『집주두공부고초당시』는 1431년(세종 13) 밀양에서 목판본으로 출간됐는데, 발문(跋文)은 예천 출신으로 당시 지대구군사(知大丘郡事)였던 별동(別洞) 윤상(尹祥)이 찬했다. 발문에 따르면 두보 시의 학습을 갈망하던 사대부들의 바람에 따라 1430년 관찰사 조치(曺致)가 주선하고 밀양부사 유지례(柳之禮)가 주관해 간행해다고 한다. 양산 대성암 소장 『집주두공부초당시』가 간행된 지 약 40여년이 지나 성종 때에 비로소 두보의 시가 언해되기 시작하는데, 이처럼 성종 때 『두시언해(杜詩諺解)』가 나오게 된 데에는 세종 때 양산 대성암 소장 『집주두공부초당시』가 간행돼 널리 퍼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간행된 시기가 분명하고 연대가 오래돼 문화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3.
작은 암자에 이토록 많은 문화재가 있는 경우는 드물다. 문화재는 대부분 고문헌으로 서지적인 면에서 가치가 매우 높은 것들이다. 우리 고장 양산에 이런 문화재가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자부심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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