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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보장제’를 제안하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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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보장제’를 제안하자(2)

양산시민신문 기자 mail@ysnews.co.kr 입력 2021/09/02 14:43 수정 2021.09.02 14:44

전용복
경성대학교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
지난 칼럼에서 ‘일자리 보장제’를 제안했다.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시민 모두를 정부가 고용하자는 제안이다. 재정도 문제가 아니다. 상기하면, 최근 평균 비자발적 실업자가 100만명인데, 하루 8시간을 일하는 조건으로 올해 최저임금 연봉 2천200만원을 지급하면, 총 22조원이 든다. 겉으로 보면 큰돈 같지만, 올해 고용정책 예산만 해도 30조원 이상이다. 이미 고용정책에 더 큰돈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국민이 체감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그 많은 돈이 쓰이고 있을 뿐이다. 이 계산에는 보이지 않는 비용 절감분을 포함하지도 않았다. 비자발적 실업이 사라지면, 실업자 개인과 가족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사라질 것이고, 정부가 운용하는 사회보험 지출도 감소할 것이며, 각종 사회병리 현상도 감소할 것이다.

정부가 비자발적 실업자를 고용하면, 이들은 무슨 일을 하게 될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공공근로에 동원될까? 공공근로라고 하면 흔히 허드렛일이나 하고, 자긍심이나 자기 성취감을 주지 못하는 일자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일자리 보장제는 전혀 다른 일자리를 구상하고 있다. 일자리 보장제는 원칙적으로 지역사회에 필요하지만, 충족되지 않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자리를 만들고자 한다. 쉽게 말해, 지역 민원을 처리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몇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현재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만, 충족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사람 돌봄’일 것이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차고 넘친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경제적으로 부족한 노인이 매우 많다. 학교를 나서면 갈 곳이 없는 아이들도 태반이다. 또한, 극단적 선택이 떠오를 만큼 가난한 가정이 곳곳에 있다. 그 외에도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지금까지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국민이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충분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았다. 정책은 있지만, 재정과 필요 인력을 실효성 있게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역 밀착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며 2020년부터 읍ㆍ면ㆍ동 단위에서 ‘찾아가는 보건복지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장 큰 원인은 ‘인력이 부족해서’라고 현장에서는 말한다. 실제, 전국 3천197개 읍ㆍ면ㆍ동에 담당 부서가 꾸려졌지만, 인력은 겨우 1만2천633명이었다. 1개 동에 채 4명도 되지 않는다. 이들이 그 많은 지역민을 어떻게 찾아다니고, 해결책을 마련해주고, 또 그 많은 보고서류를 다 작성한단 말인가. 즉,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내는 일에만도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다.

돌봄 대상을 이와 같이 ‘절대적 결핍’에 처한 사람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시민 모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 ‘일거리’를 발견하는 일은 너무 쉽다. 마을 도서관을 만들어 방과 후 아이들에게 학습과 놀이 공간을 제공하고, 필요에 따라 특별활동 등을 구성해 운영할 수도 있다. 또한, 어르신과 일반인을 위한 마을대학을 구축해 취미활동반을 운영한다든가, 다양한 독서 토론 모임, 영화감상과 토론, 지역사회 역사 발굴과 자료 수집 등 활동을 수행할 수도 있다.(이런 일은 아이들이랑 함께하면 좋겠다) 이 모두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국가의 국민이 요구하는 일이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러한 일들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고, 절대 ‘허드렛일’이 아니다. 지적이고 실무적 전문성이 필요하며,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에게 성취감과 자긍심을 줄 수 있는 일이다.

기후위기 대응에도 무수히 많은 일자리가 필요하다. 우선, 기후위기 대응이 ‘배부른 소리’가 아니라 모두의 실생활과 직접 관련한 문제란 사실부터 공유하면 좋겠다. 우리는 과거 경험해보지 못했던 ‘이상한’ 날씨를 점점 강하게 체감하고 있다. 홍수, 폭염, 혹한 등은 당장 ‘나의 일’이고, 사회ㆍ경제적으로 취약한 사람일수록 그 고통은 더하다. 또한, 경제를 위해서라도 기후위기 대응 정책은 피할 수 없다. 기후위기가 과장이든 아니든, 유럽과 미국, 중국까지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들은 ‘이미’ 탄소국경세(탄소를 배출해서 만든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이 납품하는 글로벌 민간 기업들도 ‘RE100’이란 걸 만들어서, 탄소를 배출해 만든 제품은 납품받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여전히 탄소를 뿜어내는 와중에 세계가 이런 정책을 채택하면, 우리 기업들은 수출길이 막힌다. 수출하지 못하면 기업은 쇠퇴하고, 실업자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쉽게 말해, 좋든 싫든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은 경제와 일자리를 지키는 문제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생산과 소비 두 방향에서 동시에 접근해야 한다. 첫째, 기존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원(석탄, LNG 등)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일거리’가 생긴다. 가령, 태양광 에너지는 대형 태양광발전소를 짓는 것보다는 도심의 대형 빌딩과 집집이 옥상부터 설치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다. 에너지 사용 측면에서, 단열이 잘 안 되는 옛날 집을 수리해서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또한, 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어디서 누가 왜 얼마나 많은 탄소를 내뿜고 있는지부터 알아야겠지만, 현재 그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공장은 차라리 실태 파악이 쉽다. 하지만, 가령, 농촌에서 닭, 소, 돼지를 기르는 축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탄소를 흡수하는 우리의 산과 바다도 제대로 관측하고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감시와 관리 사각지대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일에만도 수없이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우선, 급한 대로 큼직한 일거리 몇 가지만 나열해도 이 정도이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라는 물질적 풍요에 걸맞은 문화와 예술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생계를 걱정하는 예술가는 넘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들이 잘할 수 있는 안정적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정신과 영혼을 달래는 문화와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한편에서 남아도는 식량을, 다른 한편에서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연결하는 일과 같다.

필자가 미처 보지 못하지만, 유례없는 풍요의 시대에 사람들이 느끼는 다양한 종류의 결핍을 메꾸는 일거리는 무수히 나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허드렛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일은 일하는 사람에게 자긍심을 주기에 충분히 좋은 일자리이다. 일자리가 부족한가? 그렇지 않다. 자본에 ‘돈이 되는’ 일자리가 부족할 뿐이다. 기계와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할수록 인간 사회를 유지하고 풍요롭게 하는 ‘일거리’는 더욱 필요하다.

한편에서 남아도는 일손을 다른 편의 결핍을 채우는 일에 쓰이게 하자는 제안이 ‘일자리 보장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겨우’ 돈이다. 돈이 왜 ‘그깟 돈’인지는 필자의 지난 칼럼들에서 설명했다. 미리 귀띔하면, 현대 사회에서 돈이란, 금광을 채야 나오는 금처럼 희귀한 것이 아니라,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면 나오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돈을 무(無)에서 창조할 권리를 민간 은행이 배타적으로 돈벌이에만 사용하고 있고, 정부(한국은행) 또한 재정건전성이란 황당한 ‘미신’에 홀려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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