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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 주고도 욕먹는 짓 ..
오피니언

[빛과 소금] 주고도 욕먹는 짓

양산시민신문 기자 입력 2021/09/07 15:53 수정 2021.09.07 15:53

박동진
소토교회 목사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분이며,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국어사전에 긍휼(矜恤)은 ‘가엾게 여겨 돌보아 줌’이라고 풀이하는데, 영어로는 Compassion(고통을 함께 느끼다), 히브리어로 ‘헤세드’, 헬라어로는 ‘엘레오스’라고 한다. ‘자비, 인자, 불쌍히 여김’ 모두가 다 같은 말이다.

긍휼을 뜻하는 또 다른 히브리어는 ‘라함’인데, 레헴(어머니의 자궁)이란 단어에서 나온 말로 아기를 뱃속에 잉태하고 있는 어머니가 자신의 태아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그 애틋한 사랑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서 긍휼은 단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고 미안한 마음, 불쌍한 마음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어려움을 당한 그 사람의 눈으로 상황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으로 상황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감정으로 상황을 느껴서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뭘 해줄 수 있을까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뭘 필요로 할까를 먼저 살피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은 긍휼히 여기며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긍휼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면서 또 모든 지도자가 갖춰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백성을 긍휼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 긍휼히 여길 줄 알아야 백성들이 원하는 정책을 세우고 또 펼쳐서 백성들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장기간 진행되다 보니 우리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다. 친구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가족끼리 마음 놓고 외식도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 우리의 일상이 달라졌고, 미래는 너무도 불투명해져서 불안이 더욱 커지는 이때 정부는 백성을 긍휼히 여기는 정책을 적절하게 펼쳐서 국민을 보듬고 격려하며, 이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현재까지 우리 정부는 세계의 귀감이 될 만큼 잘해왔다. 그런데 국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는 재난지원금 정책은 아쉬움이 너무 크다. 현재까지 네 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고, 이제 다섯 번째 지급을 앞두고 있는데, 이 중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 지급한 것은 한 차례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보편지급한 1차 때 국민으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재난지원금을 받은 국민은 국가가 국민을 돌본다는 것이 피부로 느끼며 환호했고, 이렇게 지급된 지원금은 경제의 선순환으로 작용해 국가경제를 끌어올리는 효과까지 낳았다. ‘이게 나라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후 2~4차까지 지원은 특정계층이나 상공인들을 위한 선별지원이다 보니 엄청난 재정을 투입하고서도 일반 국민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게 넘어갔다. 이에 대한 비판이 커졌고, 마침내 5차 지원금은 보편지원으로 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으며, 당연히 보편 지급이 될 줄 알았다. 왜냐하면 그것이 국민의 뜻이니까.

그런데 기재부가 별 시답잖은 이유를 갖다 붙이며 선별지원을 주장했다. 수많은 논란이 일어났고, 국민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정 협의를 거쳐 ‘하위 88%’ 선별지원으로 확정했다.

이번에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의 명칭이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이다. 상생이란 말은 모두가 함께 살아간다는 뜻인데, 상위 12%는 그 상생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그리고 세금이란 게 수입이 많으면 세금도 많이 낸다. 상위 12%의 고소득자는 평소 더 많은 세금을 낸 사람들인데, 정작 세금 혜택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는 소외됐다. 국민 간에는 지원금을 받는 하위소득자와 받지 않아도 되는 상위소득자로 구분되고, 정부가 소득으로 국민을 편 가르기 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리고 하위 88%에게 지급한다고 하니 받는 이들은 가난해서 구제받는다는 식의 자조감을 느끼고, 대상이 되지 않는 이들은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평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되지도 않는 선별지원을 무리하게 강행해 국민에게 돈 주면서 욕먹는 멍청한 짓을 한 것이다.

기재부와 정치권은 국민의 강한 비판에도 왜 선별지원을 고집할까? 항간에는 여당의 모 대권후보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는 설과 소득의 차이로 국민의 계급을 나누고자 하는 기득권 세력들의 음모라는 설이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이런 식으로 우리나라 보편복지제도에 제동을 걸려고 하는 노림수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상위 부자들은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다수 국민을 위해 희생하는데 이제 이들을 위한 정책도 필요하다는 식의 국민 여론을 조성해서, 선별복지정책을 확대하고, 공공정책을 민영화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고소득자를 위한 민간의료보험 정책을 확대하고, 민간영리병원 도입을 제도화하려는 빅픽처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국민을 긍휼히 여기는 정책을 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조심할 것이 있다. 긍휼은 부자가 거지에게 적선하는 식의 값싼 동정과는 구분해야 한다. 값싼 동정은 받는 이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치욕과 굴욕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식의 동정은 국가가 국민을 대상으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이며, 만일 하게 되면 심각한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이번 5차 ‘코로나 상생지원금’은 왜 주고도 욕먹는지 정부와 정치권은 그 이유를 잘 살피고 고쳐서, 다음에는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멋진 정책으로 국민의 질책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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